돈이 없으면 그 가치와 희망도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금 각종 뉴스를 보면 세상이 온통 ‘살인과 돈 판’이다. 여기도 돈, 저기도 돈이 세상을 판치고 있다. 대한민국이 돈으로 완전히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돈은 벌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세상인데...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느새 돈의 노예가 되고, 우리 자신이 돈에 상품이 되어 누군가와 흥정을 하고 거래를 하고 있다.
생을 살아 가면서 돈을 향한 몸부림이 너무 처절해진 스스로를 바라보며 화들짝 놀라고 좌절하기도 한다.
사실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희망했지만, 돈 없으면 그 가치와 희망도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사회는 늘 불안하다.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돈은 더 벌어야 하고, 있는 돈을 지켜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우리의 희망인 10대들이 너나할 것 없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라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돈 몇억만 준다면 감옥이라도 가겠다는 것이 요즘의 청소년들이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주변만 빙빙 돌고 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다가가 하는 말, “야, 내가 너랑 놀아주면 돈 얼마 줄래?” 또 한 아이가 숙제를 못해 쩔쩔매고 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다가가 하는 말, “야, 내가 그 문제 풀어주면 돈 얼마 줄 수 있어?” 또 한 아이는 “선생님은 왜 힘들게 가르치세요?”하고 묻자, “너희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지”했다.
그러자 그때 옆에 있던 한 아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하는 말, “선생님도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요.” 어느 학원 강사가 귀한 시간을 내어 아이에게 개인지도를 해주었다. 강사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말했다.
아이가 짜증을 내며 하는 말, “한 시간만 더 해 주세요. 돈 더 주면 되잖아요!” 학교에서 교사들이, 가정의 부모들이 돈 이외에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치며 부모들은 자녀에게 무엇이 되기를 기대하는가.
한 아이가 학교 점수가 기대치만큼 나오지 않자,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 그럼 내 꿈은 접어야 해?”
그런가 하면 낮은 점수가 나온 자녀에게 부모는 이렇게 질책을 한다.
“이렇게 공부를 못해서 앞으로 뭐해서 먹고 살래?”
학교 교육은 아이들이 어떤 존재로 키울 것인가 보다는 어떤 기능으로 키울지가 목표가 되어버렸다. 가정에서는 이 ‘기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아이들을 수많은 학원으로 내몬다.
마치 아이들이 진열장에 놓여있는 말 못하는 인형처럼 가격이 매겨지고 주식의 주가지수처럼 등수나 점수에 따라서 희비와 가치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 교사나 부모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현재의 아이’는 사라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환상은 우리를 늘 불안케 한다.
많은 부모들이 한결같이 자녀에 대해 불안해한다. 전국에서 1등을 하든 꼴지를 하든 늘 불안한 것은 매한가지다.
마치 돈을 갖지 못해 불안해하면서도 있는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욕망은 채워도 채워질 수 없는 허구이며 환상이다.
환상은 무섭다. 특히 자녀에 대한 환상은 더욱 그렇다. 이 환상은 현재 아이의 상태를 거부하는 것이다. 지금의 ‘너’로서 충분하지 않고 ‘무엇’을 해내야 하는 미래에 돈버는 도구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요즘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이동관 대통령실 정책특보를 추천하자 아들의 학교폭력이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를 중퇴한 ‘일진’이란 조직을 했던 친구가 학생들을 상대로 수년 동안 수억을 뜯었다는 보도는 우리를 아연케 한다.
우리 부모들이나 교사들은 학교 점수라는 굴레에서 경제적 효용가치의 대상이 된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지닌 이 환상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산다. 그럼으로 아이들은 스스로를 돈을 생산해야 하는 경제단위로 규정짓는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는 평생 샤뮈엘 베케트가 쓴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히 만날 수도 채워질 수도 없는 ‘욕망(慾望)’으로 인하여 욕망 안에 갇히게 된다. 학교 폭력도 돈과 연관이 있다.
좋은 옷을 입고 여유가 있어 보이면 어김없이 힘이 센 아이가 달려들어 돈을 뜯어 간다. 돈이 없으면 부모님의 카드라도 가져오라고 윽박지른다. 여기도 돈, 저기도 돈 온통 돈 세상으로 온 세상이 돈으로 돌아버린 미친 세상으로 변해 가고 있다.
정치인도 돈으로 하는 판이니 아이들이 어찌 돈을 외면하겠는가. 앞으로 이 나라를 짊어질 청소년들이 ‘돈이면 다 된다.’는 학습을 어릴 때부터 받았으니 돈 몇억 주면 감옥이라도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미래의 동량인 어린이들에게는 참으로 인성교육은 매우 중요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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