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람을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미국의 찰스콜슨은 미국 의회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인도 캘커타의 고인이 되신 '테레사 수녀'가 미국 국회를 방문하여 연설했던 때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연설 때 연설자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고 하는데, 테레사 수녀가 연설을 마치자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더랍니다.
오히려 침묵만이 감돌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숨막히는 감동과 전율이 그들의 가슴과 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박수를 칠 여유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출생 1910년 8월 26일
오스만 제국 코소보주 스코페
(現 북마케도니아 스코페)
선종 1997년 9월 5일(87세)
인도 서벵골주 콜카타
교파 가톨릭교회
시복 2003년 10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성 2016년 9월 4일 교황 프란치스코
축일 9월 5일
상징 수도복, 묵주
수호 세계 청년 대회, 사랑의 교회
테레사 수녀(영어: Mother Teresa, 1910년 8월 26일 ~ 1997년 9월 5일)는 주로 인도에서 활동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녀다. 1950년에 인도의 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라는 천주교 계통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다른 나라에서 헌신하였다. 본명은 아녜저 곤제 보야지우(알바니아어: Anjezë Gonxhe Bojaxhiu)이다. 2016년 9월 5일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1970년대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졌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받았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는 계속 확장하여 그녀가 사망하기까지 나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거처, 무료 급식소, 상담소, 고아원, 학교 등을 포함해 123개 국가에 610개의 선교 단체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사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어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라는 호칭을 받았다. 그녀의 공인 전기는 나빈 차와가 작성하고 1992년에 출판했으며 영화와 기타 책의 주제로 활동했다. 2017년 9월 6일, 테레사 수녀와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콜카타의 로마 가톨릭 대교구의 공동 후원자로 지명되었다.
테레사(Teresa)라고 불리기도 한다.
테레사 수녀를 향해 박수를 칠 여유조차 없었던 관객들은 머리가 아주 혼미해진 것이다. 그 이유는 마지막 테레사 수녀가 던진 한마디의 말 때문 이었습니다. "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고, 시의원을 지낸 아버지와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1남2녀 중 막내로,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유명한 건축업자였고 테레사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풍요롭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소녀가 일곱살 되던 해 아버지는 의문의 변사를 당합니다.
아버지의 동업자들이 전 재산을 빼돌려 가족들은 졸지에 거리에 나앉고 말았습니다. 테레사는 그때 비로소 자신의 주위에 비참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게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어머니, 저는 평생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어요”라고 말합니다.
테레사는 가족을 떠나 로레타 수녀원에 들어갔고, 1929년 아일랜드 로레타 수도원 소속으로 인도 성마리아 여학교에 부임했습니다. 그녀는 창문 너머로 거리의 한센병 환자들을 계속해서 주시하는 중 “나는 그들의 눈에서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는 두려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두려움을 보았습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러한 두려움을 마음속으로부터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결심했고 48년 수녀원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52년 '죽어가는 사람의 집'(칼리 가트)을 만든 데, 이어 '버려진 아이들의 집'(시슈 브하반), '나환자의 집'(샨티 나가르)등을 열었습니다.
그녀는 빈자들을 위한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약 15만 명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의료혜택을 주고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일생을 이처럼 가난한 자, 의지할 곳 없이 죽어가는 자, 한센씨병 환자 사이에서 그들과 다름없이 빈곤하게 지냈습니다. 가난한 사람처럼 살지 않으면서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수선한 옷 세 벌과 낡은 신발, 십자가와 묵주가 그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녀를 만난 사람들이 모두 '거친 손에 터진 발, 주름투성이의 자그마한 할머니'로 기억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입니다.
여름엔 시멘트 바닥, 겨울엔 거기에 얇은 천 하나 깔고 지내면서 환자와 장애아를 돌보는 그에게 누군가 돈과 지위를 갖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느냐고 묻자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겐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마지막으로 테레사 수녀가 남긴 유언은 짧지만 감동적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진정한 사랑은 이것저것 재지 않습니다. 그저 줄 뿐입니다."
양파TV뉴스 애청 애독자 여러분 계미년 한해 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 갑진년에는 가내 대박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