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관리 체계가 범정부적으로 정상적 가동됐다고 간주하기 어려운 현실.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부실(행자부, 서울시청, 용산구청, 경찰청, 경찰서 등) 대처와 위기상황 대응 체계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참사 7일째인 4일까지 85명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이날 밝혔다.
현재 조사 대상에는 목격자와 부상자, 업소 관계자, 현장 출동 경찰관 등이 포함됐다. 특수본부 수사는 참사 원인 규명에 일단 집중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수본부 관계자는 "현장 인근 폐쇄회로 TV 등 영상 141개를 확인중이고 국과수를 통해 3D 시뮬레이션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
참사 당일 상황에 비춰 경찰 등 기관들의 보고나 대처가 지연되는 등 전반적인 운영 체계에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됐다는 지적은 이미 제기돼 있다. 관계 당국이 안전사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대비가 소홀했다는 의혹, 경찰 지휘부의 부실 대응 의혹 등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가에선 국정조사 등 이슈를 놓고 공방이 가열되는 모양새인데 일개 정쟁의 대상으로 매몰돼선 안 될 일이다. 명확한 책임 규명과 더불어 재난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강구해 나가는 데 일말의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참사 당시 정부의 재난안전통신망이 기관 간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사실이 4일 공개됐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재난안전통신망은 버튼만 누르면 유관기관 간 통화를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이번에는 그 부분이 잘 작동이 안 됐다"고 말했다.
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과 소방, 지자체, 해양경찰 등 재난 관련 기관이 한 번에 소통하는 전국 단일 통신망을 말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1조5천억여 원의 예산을 배정해 지난해 구축했다. 그런데 이번 이태원 참사에선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관기관 간 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현장에서 활용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다"는 해명이 나왔다. 선뜻 납득하기 쉽지 않다. 재난안전통신망의 기관 간 작동 불능 사태가 현장에서의 훈련 부족 때문만으로 봐야 하는지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차제에 철저하고 면밀한 진상 조사가 이뤄져야 할 대목이다. 경찰 등의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면밀하게 들여봐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이태원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저녁 참사 현장 인근에는 서울청 소속 기동대 1개 부대가 대기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참사 당일 야근조로 편성된 서울청 기동대 1개 부대가 광화문 집회 대응을 마치고 녹사평역과 삼각지역 인근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상 상황임을 알려주는 시민들의 다급한 112신고가 잇따른 상황에서 정작 기동대 병력은 대기만 한 채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이러하게 너무 안이한 대응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관할 경찰서와 서울청 112상황실은 참사 당시 구체적인 대응 조치 등을 놓고 의혹에 휩싸여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사고 현장에서의 부실 대응에다 정부 부처 간 소통과 지휘 체계의 작동 과정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하다.
정부의 재난관리 체계가 정상적으로 가동됐다고 간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재난 사고에 대처해야 할 안전관리 시스템이 부실 상태에 빠져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더해진다. 전방위에 걸친 재점검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