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39>
만촌(晩村)
문인수
태어나 자란 곳을 고향이라 한다면 인생말년 수년,
혹은 수십 년을 산 그 곳은 무엇이라 하나.
나는 지난 1987년 2015년 현재까지 여기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서 산다.
이 도시의 골목길에도 지금 구석구석 민들레가 돌아온 봄이다.
나는 요즘 자주 그 무엇인가 서운하여 이 거리 저 거리 각 거리 느릿느릿 돌아보는 곳,
晩村, ‘늦이마을’이라는 이 우리말 풀이가 참 좋다.
문인수
1945년 경북 고령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쉬』, 『배꼽』 외 다수가 있으며 시조집 『달북』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국어사전에 고향(故鄕)은 태어나 자라난 곳으로 정의되어 있다.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시인처럼 자라난 곳을 고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태어나고 자란 곳, 모두를 고향으로 둔 행복한(?) 사람도 있다. 물론 나와 당신의 고향도 이 지점에 있을 것이다. 삶의 노을이 점자 짙어지는 즈음에 ‘고향’을 떠올리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태어난 곳이 아닌, ‘산 그 곳’을 택한 시인의 심정을 헤아리기엔 역부족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일까, 아니면 아주 긴 한 해(年) 같은 인생에 대한 회한일까.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잃어버린 고향을 찾기 위해 인간은 타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카프카가 말한 의미와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태어나 자란 곳을’을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면, ‘고향’에 대한 향수나 의미는 무의미했을 것이다. 말처럼 타향이 있기에 고향이 있는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적응하면, 그 새로운 것은 곧 익숙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시인은 이런 지점에서 ‘도시의 골목길에도 지금 구석구석 민들레가 돌아온 봄’이 온다고 노래한다. 또 황혼의 ‘그 무엇인가 서운하여 이 거리 저 거리 각 거리 느릿느릿 돌아보는’ 중이다. 길을 되짚어보고, ‘구석구석’ 걸음 하는 눈(目)은 말 그대로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결국 삶은 소소하고 익숙한 것에 사랑을 더하여, 아름답게 나누는 것이라 말하는 듯하다 ‘晩村, 늦이마을’, 마을이름마저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건한 마음, 당신과 나 사이에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아끼고 사랑하자!(시인 정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