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37>
마음을 굶기다
이진우
오늘도 눈을 떴구나
말갛게 씻은 얼굴을 보고 있구나
하루를 그려보고 있구나
밥을 먹고 있구나
맛있게 나를 먹고 있구나
걷고 앉고 말하고 있구나
보고 배우고 익히고 있구나
마음이 흔들릴 때
깊이 숨을 들이 쉬고 있구나
내쉬고 있구나
나를 보고 있구나
남처럼,
남의 일인 양
하루를 살고
자리에 들어 있구나
오늘 하루는 어떠하였는지
나에게 묻고 있구나
대답하고 있구나
눈을 감는구나
잠이 드는구나
꿈을 찾는구나
별이 총총 흐느끼는 밤에
이진우
1965년 경남 통영 출생.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슬픈 바퀴벌레 일가』, 『보통 씨의 특권』 등이 있으며, 장편 소설 『적들의 사회』 외, 산문집 『저구마을 아침편지』 등이 있다.
● 읽자마자 문득, “그립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시를 읽고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누가 보고 싶든 간에, 그리운 대상을 품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받은 날인지도 모르겠다. 1인칭 주어인 ‘나’가 시적 화자로 등장하지만, ‘나’가 아닌 ‘당신’이나 ‘그’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다시 말해 어떤 특정 대상을 지칭하기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맑은 심성을 비춰보는 자화상 같은 시다. 또 잊고 지낸 말간 마음을 돌이켜보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별이 총총 흐느끼는 밤에’ 울컥, 그리운 대상이 떠올라 오래 ‘마음이 흔들’려 본 적 있지 않은가. 그냥 안부가 궁금하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나저나 ‘마음을 굶기’면 어떻게 될까.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프고, 그 이상을 넘어가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나 같은 사람은 두 끼만 굶어도 바스락거리며 쓰러진다. 마음이 굶는다면? 흔히 가을은 마음의 양식을 쌓는 계절이라고 한다. 마음에 허기가 지고, 궁핍하다면 육체 또한 온전치 못하리라. 이 시로 가장 쉽고 단순한 것이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이며, 평범한 일상 역시 값지고 귀한 것임을 나지막하게 읽는다. 나와 나의 안부를, 당신과 나의 안부를, 당신과 당신의 안부를 그렇게 아끼며 묻는 것이 詩이고, 삶이고 사랑이다. 시인은 지금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시인 정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