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송찬호
이런 집이 있다 구름 안장만
얹어놓아도 힘들다고
등이 푹 꺼지는 게으른 집
그래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갑다고
방울 소리 울리는 늙고 꾀 많은 집
그래도 그것을 집이라고 나는,
생활을 고삐에 단단히 매둘 요량으로
집 앞 물가에 버드나무도 한 그루 심고
나귀가 좋아하는 호밀의 씨도 뿌렸다
그리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호밀 한 자루 팔아 거위를 사고
거위를 팔아 양을 사고
양을 팔아 구름을 사면
언제 그런 부귀의 구름 위에 사는 날이 오기는 할까
벌써 버드나무는 지붕보다 높이 가리고
바람은 날마다 호밀의 귀를 간질이는데
아직도 이런 집이 있다
해가 중천인데도 창문에 눈곱이 덕지덕지한 집
집 뒤 갈밭에 커다란 임금님 귀가 산다고 소리쳐도
들었는지 말았는지 기척 하나 없는 여전히 모르쇠의 집
*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사, 2009) 96쪽
송찬호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에 〈금호강〉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민음사, 1989)
『10년 동안의 빈 의자』 (문학과지성사, 1994)
『붉은 눈, 동백』 (문학과지성사, 2000)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사, 2009)
동시집
『저녁별』 (문학동네, 2011)
수상
2000년 제13회 「동서문학상」
2000년 제19회 「김수영문학상」
2008년 제8회 「미당문학상」
2009년 제17회 「대산문학상」
2010년 제3회 「이상시문학상」
● 시골은, 살기 좋은 무인도다. 햇볕 가득한 촌집에 가서 홀로 앉아 있고 싶다. 햇볕 가득한 촌집에는, 앞집도 옆집도 필요 없다. 새파란 하늘과, 둥둥 떠다니는 구름만이 필요할 뿐이다.
시원한 지하수를 촌집 펌프로 퍼올려 가을바람과 버무려 먹을 테다. 바람만 먹고 살 수 있다면.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떼다 먹을 수 있다면.
당나귀 같은 집에 살고 싶다. 집처럼 늙어가는 당나귀와 살고 싶다. 당나귀는, 뚱보 고양이도 되었다가, 늙은 개도 되었다가, 헤엄치는 금붕어도 되었다가, 하늘위로 훨훨 날아 구름이 될 것이다. 구름 위의 궁전이 될 것이다. 바람만 먹고 살 수 있다면.
늙은 개가 조는 사이, 게으른 해가 뉘엿뉘엿 진다.
*박영민 :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과정.
현일고등학교 국어교사.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