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기(手相記) 2
권혁웅
수위에 대해 말하자면 너의 깊이는 손가락 세 마디에
해당할 것이다 너를 잡을 때마다 네 밖은 봉긋하게 솟아
오르고 너는 그 수위 너머로 잠겨든다 그러나 산도(産道)
에 이르기까지 네가 움켜쥔 길은 이합(離合)하거나 집산
(集散)할 것이니, 모래가 흐르듯 네 손을 빠져나가는 운명
을 악착으로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네가 붙든 그것이
바깥이어서, 너를 잡을 때 마다 네 안은 우묵하게 오므라
든다
*『마징가 계보학』 (2005, 창비) 62쪽.
권혁웅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등단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문학세계사, 2001), 『마징가 계보학』 (창비, 2005),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민음사, 2007), 『소문들』 (문학과지성사, 2010)
평론집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신화에 숨은 열여섯가지 사랑의 코드』 (문학동네, 2005),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몬스터 멜랑콜리아』 (민음사, 2011),
『입술에 묻은 이름』 (문학동네, 2012)
이론서
『한국현대시의 시작방법 연구』 (깊은샘, 2001), 『시론』 (문학동네, 2010)
● 섹스는 운명처럼 - 다가온 운명을 받아들이고, 또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낸다 - 집행된다. 산도(産道)에 이르기까지, 헤어지고 만나고, 만나고 헤어질 것이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이내 떠나버릴 것들을 위해, 그것은 또 우묵하게 오므라들 것이다. 하나의 큼지막한 손이 움직일 때마다 수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아픔과 기쁨, 상실과 충만이 주어지는 허탈. 술을 부른다.
우리들은 불룩하게 솟아오른다. 바깥에서 오는 것들에 흥분한다, 출렁거리며 잠기는 시간도 잠깐이다. 악착같이 헤어져도, 헤어질 수 없고, 악착같이 붙들어도, 헤어질 수밖에 없다.
남자를 바꾸는 것을, 팔자를 고친다고 한다. 산도(産道)를 거쳐 가지 않은 것을 보고,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한다. 그래서 비구니는, 산도(産道)를 끊어 인연에서 해탈한다. 여자는, 남자의 손금에게, 거미줄처럼 얽혀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홀로 살아가는 여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스스로의 손으로 운명을 느끼며, 자신의 손금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봉긋하게 솟아 오른 것은 손등이고, 우묵하게 오므라든 것은 손바닥이겠지만.
* 수상(手相) : 손금을 보는 것
*박영민 :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과정.
현일고등학교 국어교사.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