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42>
증인
김효연
네안데르탈인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동안
보행기가 치매 할머니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동안
뇌수막염이 그녀 뇌를 절반 넘게 파먹는 동안
배꼽이 탯줄을 놓치는 동안
한 남자가 백골로 건너가는 동안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핥으며
복지학 개론서를 뒤적이며
밑줄을 나이프로 자르며
골머리를 식히려
나는 남쪽의 휴양지를 향해
가고 있다.
김효연
경남 진주 출생.
2006년 계간 『시와반시』로 등단(필명 김문주)했으며, 시집 『구름의 진보적 성향』(시인동네,2015)이 있음.
● 인간은 충분히 고독하다. ‘네안데르탈인’이 ‘배꼽의 탯줄’을 끊고 ‘지상’에 나와, 지금에 이르는 현생 인류까지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요, 살아가는 데 궁극한 화두(話頭)이다. 시인 고은은 “고독 없는 인간은 영혼 없는 인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득, 당신과 내가 지나왔을 숱한 날을 떠올려본다. 그 수많은 여정 중에서 왜 하필이면, 고독이란 말이 가장 먼저 ‘뇌’를 관통하며 지나갔을까. 시인의 의도일 수 있겠으나, 이 시는 은연지중(隱然之中)에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고 있는 듯하다. ‘당신과 나’로 대변되는 ‘우리’는 언젠가는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고, ‘보행기’가 ‘어디론가 데려’갈 것이다. 슬프게도 ‘배꼽이 탯줄을 놓치는’ 그 순간부터, 전력질주로 ‘백골을 건너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충분히 고독을 즐기며,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즐기다가도 어느 순간 허공이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른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이 ‘배꼽의 탯줄’을 끊고 ‘지상’에 나와, ‘보행기’가 ‘어디론가 데려’갈 때까지 충분한 고독과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즐길 것이다. 또 그러다 허공을 맞이할 것이다. 어느 한 쪽에선 참사와 테러가 일어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도, 또 한 쪽에선 ‘탯줄’을 끊는 신성한 의식이 있을 것이다. 무한반복이면서 동시에 허공에 가까워지는 일, 그러니 어찌 삶이 고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짧은 삶 동안 우리도 넋 놓지 말고, ‘남쪽의 휴양지’에 한 번 다녀오자! 뭐 고독과 함께 같이 가도 좋고...(시인 정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