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41>
채석강에서
최창윤
세계의 물살이 흘러 시간은 스쳐간다
천천히 보이지 않게, 저 먼 곳까지 아득하게
우리가 잠잘 때 우리가 말하듯이*
시간은 사라진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인생이 흐르듯 물이 흐르듯
저 알 수 없는 심연을 향해
돌은 구른다 모래로 부서진다
절리 해안의 숨은 그림으로 쌓여간다
우리가 잠잘 때 우리가 말하듯이
깨진 유빙遊氷 사이를 떠돌다
침몰하는 세기말의 유령선처럼
아무도 읽지 못한 끝장이 다가온다
온 세상의 책장이 덮인다
끝끝내,
뜻 없는 먹구름들이 몰려온다
흙먼지 같은 욕망들이 일생 동안 물결치다
층층이 텅 빈
적멸寂滅의 모래 절벽으로 남는다
* Lou Reed, Laurie Anderson, Brian Eno의 곡 <In Our Sleep> 중에서.
최창윤
1968년 대구 출생.
2008년 계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월간 『미술세계』 등에 미술비평을 하며 미술비평가로 활동하였다. 유고 시집으로 『잘 가라, 버디 홀리』(북인,2015)가 있다.
● 2015년11월14일, ‘세계의 물살이 흘러 시간은 스쳐간다’. 프랑스에서는 폭탄 테러로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대한민국에서는 13만 국민이 광장으로 나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세계의 물살’에 나와 당신도 올라있는 것이다. 물은 언제나 더 넓은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고 종국에 바다에 이른다. 그 사이 모진 과정을 겪겠지만 말이다. 민주주의 또한 시대를 관통하며 ‘천천히 보이지 않게’ 조금씩 다가왔으며, ‘저 먼 곳까지 아득하게’ 번지고 있는 중이다. 다만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빨라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잠잘 때 우리가 말하듯이’ 그렇게 조용히 왔으면 좋겠지만, 민주주의는 꼭 광장을 피(血)로 물들이고서야 찾아온다. 2분30초 분량인 로리에 앤더슨(Laurie Anderson)의 <In Our Sleep>를 들어봤다. 시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음악 또한 폐허적이고 몽환적이다. 심지어 혼자 듣고 있노라면 스멀스멀 공포가 밀려 온다. 이 또한 시인의 사상과 시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시간은 사라진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육체적(물리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은 결국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상과 철학, 신념 등은 기록과 구전으로 남겨진다.
‘저 알 수 없는 심연을 향해’ 나는 ‘구른다’, 그리도 당신은 ‘부서진다’. 지금은 비록 ‘침몰하는 세기말의 유령선처럼’ 컴컴하고 비릿할지라도, 종국엔 완성된 그 무엇 ‘아무도 읽지 못한’ 또는 아무도 읽어보지 못한 ‘끝장’ 같은 순수에 이르게 될 것이다. ‘뜻 없는 먹구름들이 몰려’와 풍파를 일으키고, 더나가 거대한 물의 힘이 ‘층층이 텅 빈 적멸寂滅의 모래 절벽’에 자국으로 남게 되면... 그러니 저들은 마치 전부인양, 또 나와 당신은 오늘이 마지막인양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자.(시인 정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