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40>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정현종
1939년 서울 출생.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사물의 꿈』, 『견딜 수 없네』 등 다수가 있다. 외에도 시선집, 산문집 등이 있으며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만해문예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 8월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그 계절이어야 느끼는 감성도 있겠지만, 그 계절이 아닌 때에 그 계절을 느끼는 기분이랄까. ‘갈수록’ 날과 달은 유속이 빠르거나 쓸쓸하기 마련이다. 굳이 ‘8월’, ‘9월’ ‘시월’이 아니더라도 사물과 대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시인에게는 그 모든 날과 달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또 보통의 우리 이웃들은 달(月)을 보고 살기보다, 날(日)을 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한 계절을 미리 내다볼 여유도 없이 무작정 딸려갈지도 모르겠다. 어느 때가 되면 그렇게 ‘흘러가는 것’에 함몰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슬픔에 빠질 것이다. 그 중에는 생로병사가 있을 테고, 그 중 가장 아프고 슬픈 건 역시나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생(生)과 사(死)가 아니겠는가. 주변의 그 모든 것들을 듣고 보고 겪는 일이 날마다 달마다 생기는 게 ‘사람의 일’이다. 적당히 견딜 수 있는 그 무엇은 스스로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중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구절이 있다. 마찬가지로 날(日)마다 달(月)마다 겪게 되는 소소한 것까지, 아끼고 사랑해야 견딜 수 있는 긴 생(生)이다. '사람의 일’인 ‘변화와 아픔’ 그리고 그런 ‘시간의 모든 흔적들’을 오롯이 견디고 나야, 비로소 ‘견딜 수 없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와 당신의 삶 중에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그리고 또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나와 잘 견뎌보자! ‘견딜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보자.
이렇게 또 한 계절이 지는구나. ‘8월’, ‘9월’ ‘시월’...(시인 정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