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35>
영원을 부르는 벨칸토 창법
김사람
하드커버가 들썩거려요 마스께라!
무거운 뜻을 가진 가지가 우거지고
하늘보다 커다란 잎이 자라
활보하는 새들과 구름의 길을
모두 가려버리고 있어요
잎이 울음의 고체형이란 걸 안다면 마스께라!
나무에 기대어 울 자격이 있어요
울음에도 기교가 필요하단 걸 아나요
꽃이 죽고 새가 죽고 바람이 죽고
소리만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내 귀는 늘 젖어 있지만 아무도 몰라요
뼈가 흔들려요 폐가처럼 텅 빈 생각에도 흔들려요
나는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해 노래한 적이 있어요
미래는 딱딱하지 않았으므로 마스께라!
현재로 공명되지 않아요
내 마른 몸은 그림자로 채워져 있어요
호흡을 할 때마다 들락날락 나를 찌르는
딱딱한 그림자가 무서워요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날 이용하죠
나는 곧 버림받을 것을 예감해요
몸을 부비는 소리로 유혹하면 마스께라!
촛대에 검은 불이 붙어요
긴 시간을 흐르는 미성으로
당신이 오고, 떠나는 방식대로
내가 미쳐가고 있어요 마스께라!
김사람
1976년 경북 의성 출생.
2008년 계간 『리토피아』 등단.
● ‘벨칸토 창법’, ‘마스께라’라는 음악 용어이다. 그러나 그 뜻을 모른다고 해서, 이 시를 읽는 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약간의 수고를 더한다면, 더 맛있게 읽을 수 있다. 벨칸토란 아름다운(bel) 노래(canto)를 뜻한다. 벨칸토 창법은 이를 위하여 부드러운 가락, 아름다운 소리, 훌륭한 연주 효과 등을 고려하며 부르는 것이다. 반면 ‘마스께라’ 창법은 신(창조주)이 완전한 악기로 빚은 인간의 발성기관을, 그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고 공명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하드커버가 들썩거려요’로 시작하는 이 시는, 문장의 가벼움 뒤에 묵직한 세계를 품고 있다. 묘한 느낌으로 신성(神聖)을 부정하는 듯하며, 동시에 모순된 구조와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고 있다. 서로 다른 두 창법을 시 전반에 배치한 것은, 모순 덩어리인 사회적 구조를 에둘러 이야기하는 듯하다. 결국에는 우리는 ‘꽃이 죽고 새가 죽고 바람이 죽고’, 겨우 ‘폐가처럼 텅 빈’ ‘나’만 남는 그날이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있다. ‘활보하는 새들과 구름의 길’이 ‘모두 가려’지고, ‘오지 않을 미래’가 머지않다는 것은 어쩌면 태고[太古](에덴동산]) 때부터 예견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공포, 부조리, 모순, ‘검은 불’ 같은 것들은 이미 지구별에 인간이 존재하던 그 순간부터 내 이웃처럼 함께 한 것들이다. ‘당신이 오고, 떠나는 방식대로’ 늘 변함없이 존재했던 본질 그 자체였고, 이후에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또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한 몸 같은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시는 불안한 시대에 자신에 대한 성찰과 연민, 그리고 사랑에 대한 숭고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과 내가 ‘미쳐가’지 않게, 서로 ‘기대어 울’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그런...(시인 정훈교)
* 【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26회 연재부터 이번 35회까지는 등단과 관계없이, 대구경북지역 젊은 작가 중심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예전처럼 ‘숨은 시’ 읽기 중심으로 소개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