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32>
붉은 저고리
조성화
못내 미련 떨며
뒤돌아보는 계절을 보내고
덩그러니
그대로 두었다
인기척이 느껴진 어제 새벽
설레는 마음 누를 길 없어
버선발로 뛰어가
손을 덥석 잡고 보니
작년 이맘때
어머니가 지어 주신
붉은 저고리 곱게 두른
가을이 와 있었다
어여 오라고
어여 오라고
내 가슴 한 편 내어 주니
냉큼 들어 와 앉는 것이
한참을 떨었나 보다
한참을 기다렸나 보다
조성화
2013년 계간 『시인정신』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동그란 그대의 발꿈치가 보고 싶은 날은』(한국문단,2015)이 있음.
● 문득 지나온 계절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이에게는 올해 여름이, 또 어떤 이에게는 지난여름이 더 뜨거웠을 수도 있다. 작열의 태양이 맹위를 떨치고, 그 기운이 서서히 물러가는 즈음 이 시를 읽는다. 하지만 도처에 걸음을 떼지 못하고, 여전히 머뭇거리며 ‘못내 미련 떨며 뒤돌아보’는 그리움이 있다. 가야 할 사람은 가야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보내주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들었음에도 ‘미련’은 쉬 가시질 않는다. 시인은 ‘작년 이맘때 어머니가 지어 주신’ 그 마음을 놓지 못해, ‘못내 미련 떨며 뒤돌아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과 나도 어떤 이가 떠나면서 남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통째로 울어본 적이 있으리라. 산과 들은 이제 ‘붉은 저고리’로 나풀거리는 계절에 들어섰다. 아직은 지난 ‘인기척이 느껴’지는 ‘새벽’이고, 또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설레는 마음 누를 길 없어 버선발로 뛰어가 손을 덥석’ 잡아 보고 싶은 ‘새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 맞이할 ‘붉은 저고리’는 모양부터 느낌까지 모두 달라야 한다. 곧 다가올 ‘붉은 저고리’는 다음을 기다리는 비움의 시간이어야 한다. 기다림이 있어야 다음이 있고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놓지 못하는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마는, 이제는 가만가만 ‘뒤돌아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달래야 한다.
지난 계절은 두고 당신에게 ‘내 가슴 한 편 내어 주’는 계절이 되자.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서로에게 기다림이 되는 계절이 되자. ‘가을’ 내내 내가 당신을 기다릴 것처럼...(시인 정훈교)
* 【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26회 연재부터 35회까지는 등단과 관계없이, 대구경북지역 젊은 작가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