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31>
빈 들
최진
망초꽃 가득한 묵정밭 바라보며
대천댁 할매 한 마디 던진다
그 어른 가고 나니
들이 빈다
최진
1977년 경북 성주 출생.
2014년 계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 ‘망초 꽃’은 국화과 식물로써 하얀 꽃을 피우며, 우리 산야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너무 흔해 이 시에서는 민초(民草)로도 읽히기도 한다. 하나 둘 당신이 쓰러지고, 쓰러진 곳에서는 어김없이 풀이 자란다. 그런 곳이 점점 많아지면 결국 농사를 짓지 않는, 지을 수 없는 '묵정밭'이 되고 만다. 한 생이 지고 난 그 자리에, 하얀 망초 꽃 핀다는 그 아득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또한 비와 바람과 함께 한 ‘그 어른’의 생은 그야말로 우주적이었을 것이다. ‘묵정밭’ 같은 산골로 들어, 산을 일구고 밭을 일구던 생이 아니었겠는가. 한 평생 호미를 놓아본 적 없을 테고, 등에 이고 지고 억척같은 세월을 살아냈으리라. 그 억척스러움으로 자식들을 건사하고, ‘빈 들’을 풍성하게 메웠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하얀 망초 꽃 곁에 누워 말이 없다.
‘그 어른’이 가고 난 자리도 난 자리지만, 난 자리를 다시 메울 수 없어 이 시절은 더욱 아득하다. 아직은 ‘대천댁 할매’가 마지막 든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녀도 오래지 않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대천댁 가고 나니 들이 빈다"라고 읊어줄 이도 없을 것이다. 이 짧은 시로 쇠락해가는 농촌 풍경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대한민국을 고스란히 읽는다. 어쩌면 하얀 꽃 천지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와 당신은 삶 전부를 ‘밭’에 바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분간은 먹먹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을이 되겠다.
* 【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26회 연재부터 35회까지는 등단과 관계없이, 대구경북지역 젊은 작가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