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손갤러리는 오는 8월 20일부터 이강소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 판화, 세라믹조각 등 다양한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작가 이강소의 회화 20여점과 사진 1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종전 후, 한국 사회는 국가적 근대화와 함께 다양한 해외 문화가 유입되고, 정부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정치적 성과로 내세 워 장기집권을 획책하려던 군사정권 아래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70년대 초반,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현실 속에 서 한국 현대미술은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신세대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었다.
1965년 당시 서울대 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청년 작가 이강소는 전통문화를 낡고 비근대적인 것으로 점점 소멸시키고 서구화를 추구하는 정부의 문화정책에 의문을 갖고 이 시대의 우리에게 ‘ 미술이란 무엇인가 ’ 라는 미술의 본질적 가치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본질적 탐구는 인간의 삶 속에서 시대적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주체적 경험과 판단의 결과로써 행위에 이르는 실험성 강한 퍼포먼스와 해프닝 등으로 이어졌다.
1974년 대구작가를 중심으로 한국 최초의 《 현대미술제 》를 결성한 이강소는 실험 미술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권위적인 기성세대에 맞서 한국 미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전위적 활동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유신체제 아래 대중의 의식 마저 통제하려 했던 정부의 압박은 문화 예술로까지 번지면서 퍼포먼스와 해프닝은 대중을 집결시키고 반정부적, 반체제적 선동을 주도한다는 해석으로 활동의 장소를 잃고 서서히 위축되어 가다가 아쉽게도 단명에 소멸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의 실험 미술은 단명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우리 사회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 졌던 중요한 시기였다. 그 후, 이강소의 작업은 이런 억압된 정치적 현실 조차도 동시대의 감수해야 할 역사적 배경으로 받아 들이고, 관객의 동원 없이 매개물을 사용함으로써 관객의 간접적 동참을 유발시키는 투영적이고 암시적인 작품으로 전개해 나갔다.
예를 들어,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발표한 〈 무제 75031 〉 작품에서 그는 살아있는 닭을 석고 가루가 뿌려진 전시장에 방사시키고 닭 이 지나간 바닥의 흔적을 3일에 걸쳐 9장의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것은 ‘ 존재의 한계 ’ 즉 삶과 죽음 ‘사이’ 를 거쳐간 존재가 현실적 시공간 속에 남긴 ‘ 흔적 ’이라는 재현적 이미지를 통해 ‘ 부재 ’에서 ‘ 존재 ’를 유출시키는 그야말로 예술의 본질적 환원이라는 이강소의 미술적 관점이 절제된 방식으로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그의 회화나 조각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미술을 사고思考의 영역에 범주시키고 미술품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재현물이나 설정 그 자체가 아닌, 작가 의 설정에 관객을 참여 시킴으로써 관객이 주체가 되어 상황을 인식하고 각자의 삶의 맥락에서 자신의 ‘ 존재적 가치 ’를 알아 가게 하는 ‘ 미적 체험 ’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예술의 본질적 환원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의 회화는 대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는 정신적 본질을 찾는 동양 산수화의 철학을 근본으로 그 깊이가 깊어 질 수록 해체되고 간결화되어 추상성과 여백이 강조되어 왔다. 그리고, 이런 추상적 공간에 종종 등장하는 오리 또는 배와 같은 보편적인 모티브는 여백을 구체화 시키는 매개체 역할로써, 이미지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보다는 화면 밖의 영역에 존재하는 실재를 환기시키기 위해 작가가 관객에게 던지는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예컨데, 둥둥 떠 가는 오리는 보편적으로 흐르는 물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 나 ’는 그 흐르는 물을 따라서 푸른 산과 우거진 나무 사이로 하늘을 보고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의식의 실존에 있고 인간의 존재는 자신이 인식의 주체가 되어 직접 경험 함으로써 본질을 지각하게 된다는 ‘ 인간의 존재와 부재 ’의 문제점을 의식의 실존에서 두었던 초기 이강소의 전위적 실험정신이 70년대 정치적 배경에 의해 소멸된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 미술의 ‘ 의식의 거점 ’으로 더욱 확고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우손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강소의 작품세계를 개념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탐구해 온 작가정신의 ‘ 흔적 ’을 통해 물질적 풍요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존재의 가치를 정신 적 영역에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