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30>
여름의 먼 곳
최백규
이 세계는 나에게 자폐를 앓고 있다
길가에 죽은 고양이 속에도 희망이 없다 내장 뜯는 쥐가 있다
아버지는 몇 달째 방 안에 누워 썩어만 가고
어머니는 문 열 때마다 숨소리 확인한다
그녀의 돌아앉은 등과 그의 남은 생 사이 간격마저 흐릿해지면
지구가 가진 모든 시간이 눈동자 위 멈추고
나는 이미 늙었다 꽃 피는 계절에
세상의 모든 고아들이 한 식탁에 모여 앉아 식은 밥알 씹듯
사람들은 한 아름의 치욕과 허탈을 삼킨다
주기적으로 상처가 벌어질 때마다 아득해지는 천국 그리고 이곳의 간극
밤에 나갔다가 낮에 쌀을 사 들고 돌아오는 골목에서 매일
바람이 죽어가는 것을 본다 햇살은 시끄러웠다
최백규
1992년 대구 출생.
2014년 월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으며,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예술인력 육성사업(AYAF) 문학 분야'에 선정되었다.
● ‘이 세계는 나에게 자폐를 앓고 있다’가 아니라 ‘나는 나에게 자폐를 앓고 있다’가 어쩌면 오늘날 더 맞는 문장이겠다. 자신을 폐(斃)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시절이다. 외부와의 단절은 곧 나와의 단절이기도 하다. 시는 현실을 아주 냉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쥐’는 ‘죽은 고양이’와 단절이었고, ‘아버지’는 문 하나를 두고 이쪽 세계와 단절이다. 특히 ‘세상의 모든 고아들’은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단절을 겪은 셈이다. 단절에는 나를 중심으로 한 자발적 단절과 타인을 중심으로 하는 비자발적 단절이 있다. 대개 자발적 단절은 ‘한 아름의 치욕과 허탈’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주기적으로 상처가 벌어질 때마다 아득해지는’ 그 간극(또는 단절)을 메우지 못해서 외부와 영영 단절하는 경우도 있다.
비자발적 단절은 고양이가 죽어가는 것이라든가, ‘바람이 죽어가는 것’ 등이다. 단절의 한 면은 조용하다. 반면 또 다른 단면은 시끄럽다. 이 둘을 아우르는 것이 ‘햇살은 시끄러웠다’이다. 극과 극은 상통(相通)한다 하였다. ‘여름’처럼 우리가 계절을 나누어 부르는 것은 단절이고, 반면 ‘먼 곳’이라 부르는 것은 연속성이다. 계절은 한마디로 단절과 연속의 교집합인 것이다. 당신과 나의 삶, 그 어느 것도 교집합 아닌 것이 없고 단절 아닌 것이 없다. 결국 단절은 단절도 아니요, 동시에 곧 단절인 셈이다. 우리가 자폐인 동시에 자폐가 아닌 것처럼.(시인 정훈교)
* 【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26회 연재부터 35회까지는 등단과 관계없이, 대구경북지역 젊은 작가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