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28>
안단티노
김하늘
너는 늘 오늘을 말했지만
그건 언제나 어제였지
가여워라, 오늘이라고 말해줄게
네가 어제의 사람이라도 괜찮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너 뿐이어도 괜찮아
괜찮은 게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먼 기억에서 기생해
형광색 다족류 벌레처럼
언 가슴으로 너를 사랑하기 10초전,
나는 내 멘탈이 싸구려였던 걸 알았지
이어폰을 배꼽에 꽂고
알몸으로 허밍하고 울먹이고 습도가 높아지고
멀어지고 곁을 내주고 손을 뿌리치고
키스해,
이해 같은 거 없어
동의 같은 거 없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너의 오늘일까
미처 어제를 다 살지도 못했는데
나는 어제를 오늘이라고 믿고
어제가 오늘이어도 되는 네가 있으니깐
내 의식을 모두 어제로 끌어 모으고
괜찮아,
다 괜찮아지기 위한 진통 같은 걸 거야
월경처럼 어제를 뱉어내도 돼
라고,
내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네가 있다면
나는 더욱 먼 과거에 있을게
천천히 와도 돼
김하늘
1985년 대구에서 출생.
2012년 『시와 반시』 등단.
● 음악적 표현의 빠르기말 중 ‘안단티노’는 그 빠르기가 중간쯤 되는 지시 기호이다. 당신과 나의 일상은 지금 이와 같은 빠르기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늘 오늘을 말했지만 그건 언제나 어제였지’처럼, 우리는 오늘에 이르고서도 어제와 오늘을 혼동하는 불확실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가여워라, 오늘이라고 말해줄게 네가 어제의 사람이라도 괜찮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너 뿐이어도 괜찮아’라고 토닥거리고, 이쪽에서 당신에게로 건네는 따뜻한 말(言)이 오로지 말뿐이어도 충분히 고마운 시대이다.
사고방식 또는 행동방식이 ‘형광색 다족류 벌레처럼’ 난삽하고 어지러운 무질서 속에 있다하더라도, 사랑만큼은 쉬이 멀어지지 않는 심성(心性) 그 자체의 ‘알몸’이어야 한다. 우리 곁에서 ‘허밍하고 울먹이고 습도가 높아지고 멀어지고 곁을 내주고 손을 뿌리치고’ 심지어 온갖 ‘싸구려’ ‘멘탈’의 결집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우리가 ‘괜찮아,’지기 위한 사랑의 과정인 것이다. 때로는 ‘진통’으로 또 때로는 ‘월경’처럼 주기적이고 붉은 빛깔로 다가올지언정, ‘어제’와 ‘오늘’의 과정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어쩌면 시인은 이런 카오스(Chaos)적 무질서 속에서 절대불변의 사랑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빠르고 급하지 않게, ‘천천히 와도 돼’라고 읊조리며. 이 시는 당신과 나의 사랑이 비록 ‘어제’와 ‘오늘’을 오르락내리락 하더라도, 우리 사랑(또는 알몸)만큼은 절대 저버리지 말자라는 지시 기호 같다.(시인 정훈교)
* 【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26회 연재부터 35회까지는 등단과 관계없이, 대구경북지역 젊은 작가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