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작별
이선욱
물결이 물결을 밀듯
바람은 바람을 밀고
저녁은 저녁을 미네
누군가 떠내려갔으나
조금만 기억해보면
누군지 금방 알 만한
사람이 떠내려갔으나
우리는 차가워져서
떼 잃은 물고기처럼
외로울 만큼 차가워져서
환절의 길목에
입을 벌리고 있네
어떤 경련도 없이
이선욱
1983년 대구 출생.
2009년 계간 『문학동네』 등단,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시집 『탁, 탁, 탁』(문학동네,2015)이 있음.
● 문득, 여기까지 나를 밀고 온 당신을 떠올려 본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밀며 때로는 비켜서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앞서가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와중에 ‘누군가 떠내려갔으나’ 애써 외면하고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차가워져서’ 서로에게 가시 돋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다. 뱉고 나면 ‘외로울 만큼 차가워’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서로의 물결과 서로의 바람만큼은 한사코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 이젠 ‘저녁이 저녁을’ 미는 지경에 이르렀다. ‘환절의 길목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이도저도 아닌 극심한 폐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우울과 외로움은 이미 내 것임을 알기에, ‘알 만한 사람이 떠내려’가도 ‘물결이 물결을 밀듯’ 제 혼자 열심히 갈 것이다. 물론 그 물결 위에 당신이 있고, 당신의 당신도 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당신과 나는 서로의 당신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누군가 떠내려’가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분연히 앞서 갈 것임을 알고 있다. 본인이 ‘떼 잃은 물고기’인 줄도 모르고, 서로가 ‘입을 벌리고’ ‘어떤 경련도 없이’ 밀며 밀며 가고 있다는 것을.(시인 정훈교)
* 【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이번 26회 연재부터 35회까지는 등단과 관계없이, 대구경북지역 젊은 작가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