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달의 뒤쪽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아니다
김태형
나 때문에 내가 보이지 않는다
달의 뒤쪽은 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갇혀 있으면서도
길고 좁은 감옥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저곳이 아니라서
가까스로 이해한 문장에만 밑줄을 친다
네가 있어 네가 보이지 않는다고
김태형
1971년 서울 출생.
1992년 계간 『현대시세계』로 등단했다. 시선집 『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 산문집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외, 시집으로 『로큰롤 헤븐』, 『코끼리 주파수』 외 펴냄.
● 얼마 전까지 달의 뒷면은 미지의 세계이자, 성스러운 곳 그 자체였다. 그러나 올해 초 미 항공우주국 나사가 달의 뒷면을 생생하게 촬영하였다. 달 뒷면을 보기까지 꼬박 35억 년이 걸린 셈이다. ‘달이 있어’ 달이 보이지 않았고, ‘나’가 있어 ‘달’이 보이지 않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곳은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길고 좁은 감옥’의 느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저런 기술적인 발달로 예전엔 미처 읽지 못했던 ‘문장’들이 이제는 ‘가까스로’ 읽히기도 한다.
물론 아직 못 다한 풀이와 ‘문장’이 한 가득이긴 하다. 그렇다고 ‘가까스로 이해한 문장에만 밑줄’을 친다고 해서 아쉬울 것도 손해도 없다. ‘네가 있어 네가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기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지금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이다. 오히려 더 많은 발굴(?)을 위해 형형색색의 형광펜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당신과 나에게 과거라는 진실과 오늘이라는 진실이 있다면, 이제 그를 맞이할 때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반어(反語)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시인 정훈교)
* 【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다음 26회 연재부터 35회까지는 등단과 관계없이, 대구경북지역 젊은 작가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