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숨은 시 읽기】
이름 짓기
서정홍
“순동 어르신,
이른 아침부터 어디 가세요?”
“산밭에 이름 지어주러 간다네.”
“산밭에 이름을 짓다니요?”
“이 사람아, 빈 땅에
배추 심으면 배추밭이고
무 심으면 무밭이지.
이름이 따로 있나.”
서정홍
1958년 경남 마산 출생.
1992년 ‘제4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활동 시작하였다. 시집 『못난 꿈이 한데 모여』, 동시집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 산문집 『부끄럽지 않은 밥상』 외 다수가 있음.
● 처음에는 ‘산밭’이 무언가 했다. 대상에 이름을 붙이거나 호명(呼名)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의 성질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대상과 내가 하나로 일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흔히 이를 두고 일심동체(一心同體)라 한다. ‘산밭에 이름’ 짓는 일은, 어쩌면 자기 이름(또는 삶)을 짓는 일이기도 하다. 당신과 나도 이처럼 ‘이름 짓’는 행위를 함으로써, 온정(溫情)과 시심(詩心)이 가득한 시인의 숨은 뜻을 통째 내 안으로 들여올 수 있다. “농부의 마음이 곧 시인의 마음이다.”란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곧 대상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과 노력의 염결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만, 나의 ‘산밭’을 생각한다. 당신과 나도 ‘이름 짓’는 행위를 통해, 염결성을 추구할 수 있다. 즉, 마음 밭을 통해 마음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묻는다. 당신이 짓고 있는 마음 밭은 산비탈에 있는가, 아니면 구릉지에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도심 한복판에 있는가. 또 그 마음 밭의 크기는 몇 평쯤 되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 마음 밭에 무엇을 키우고 있는가.(시인 정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