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의 집단행동 금지명령 등을 비판...전공의 파업 지지 응원.
서울대병원 등 빅5 병원 중 서울성모병원을 제외한 빅4 병원(서울대병원, 서울 세브란스병원, 아산중앙병원, 서울 삼성병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설 이후 파업 등 단체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노환규 전 의사협회 회장이 전공의들을 향해 "정부가 ‘면허취소’를 운운하며 협박하고 있다"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응원했다.
의사협회 노환규 전 회장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 전공의 선생님들께 >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통해 “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냐. 의사는 이렇게 겁박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잘못된 의료정책을 저지하는 것 말고 집단 휴진의 정당한 사유가 뭐가 있겠나”라고 복지부의 집단행동 금지명령 등을 비판했다.
노 전 회장은 또 “병원별 담당자를 배치하고 경찰까지 동원한다니 겁을 주면 의사들이 지릴 것으로 생각했나보다”며 “가장 염려하는 건 의사들이 파업이 아니라 의사들의 허탈감이다. 진료에 집중해야 할 의사들이 허탈감과 분노에 빠질 때 이는 진료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환자를 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듭 정부를 향해 “공산국가라면 가능하겠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절대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며 “의료대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대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장에 김택우 현 강원도의사회장 선출, 투쟁대열을 정비했으며, 김 비대위원장은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며 "개원의·전공의·의대생 등 모든 회원, 모든 지역, 모든 직역의 뜻을 한데 모아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잡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빅5’(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은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서울성모병원을 제외한 빅4 병원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참여하겠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의료 공백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짙어지자 정부는 ‘엄정 대응’ 방침을 재차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파업 돌입 즉시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불응 시 징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 전 집단으로 사직서를 낼 움직임을 보이자 전공의를 교육하는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도 내렸다. 의사 면허가 박탈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다음은 노환규 전 의협회장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 전공의 선생님들께 >
정부의 의대증원 2천명 발표는, 첫째, 정치로 과학을 덮으려는 무모한 정책입니다. 둘째,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의료와 과학을 송두리째 위기에 빠뜨리는 위험한 정책입니다. 셋째, 대한민국인의 건강 뿐 아니라, 국가를 위태하게 하는 최악의 정책입니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 나서는 여러분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미리 막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드리고 싶은 말씀
1. 두려워 마세요.
의료대란을 두려워하는 정부가 ‘면허취소’를 운운하며 협박하고 있습니다. 박형욱 교수님께서 쓰신 것처럼, 정부는 면허취소를 내릴 권한이 없습니다. 자세한 것은 박형욱 교수님의 포스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의료대란이 발생하면 정부와 협상을 하게 됩니다. 혹자는 협상이라는 단어 자체를 공격하지만, ‘의대증원계획 철회’라는 의사들의 요구조건을 내미는 것 자체가 협상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반드시 협상을 먼저 제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정부입니다. 그래서 “전공의 핸드폰번호를 확보했다”라고 했다가 문제가 지적되자 “아니다”라고 번복하는 해프닝이 생기고, “경찰을 배치했다”거나 법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면허취소’를 운운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모두 그들의 두려움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협상이 시작되면, 의료계가 협상 테이블에 나설 때 기본적인 내세우는 조건이 “관련 처벌 금지”입니다. 2012년 12월의 주말휴진투쟁 때에도 그랬고, 2014년 3월 10일의 투쟁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 때도 정부의 대응은 지금과 똑같았지만, 처벌 받은 의사회원들은 없었습니다.
2020년의 투쟁 시에는 투쟁을 이끌던 회장이 느닷없이 백기를 드는 바람에 의대생들이 피해를 입는 일들이 벌어졌지만, 투쟁을 이끄는 리더가 제정신만 차린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2. 권력으로부터 의료를 지켜내는 것
의료는 과학이고, 양질의 의료는 고도화된 과학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의료를 ’타파해야 할 고소득 전문직종의 카르텔‘로 인식하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의료를 정치로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권력이 의료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은 의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의료는 권력의 명령을 받는 대상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투쟁은 단순히 의대증원을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으로부터 의료의 본질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미래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는 일인 것입니다.
3. 내부의 거듭나기
늘 뒤돌아보면 가장 큰 문제는 내부에 있었습니다. 의대증원 이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인구가 증가하던 1980년~2010년 30년간 의사증가율은 인구증가율의 10배를 상회하였습니다. 인구감소를 마주한 지금은 의대증원이 아니라 의대감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투쟁보다는 대화“를 내세우며 당선된 이필수 회장은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다가 의대증원이 발표되자 즉시 사퇴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무능과 배신의 끝을 보여주었습니다. 추무진 전 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그가 소속된 단체에서 ”의대증원을 찬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모두 투쟁하지 않을 것을 내세우며 협회장에 당선되었던 인물들입니다. 미래의 주인공이 될 젊은 여러분들을 중심으로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4. 끝으로
어제가 오늘을 결정하고, 오늘이 내일을 결정합니다. 오늘 포기하면, 내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의식 있는 선배들도 아직 많이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하지 않더라도, 그분들이 여러분들을 끝까지 돕고 함께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