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위덕왕(威德王) 때의 이야기다. 인적이 끊긴 심산유곡의 동국에서 홀로 초근목피와 흐르는 계곡물로서 허기를 잊으며 기도하는 40후반의 승려가 있었다. 세상사람은 그를 검단선사(黔丹禪師)라고 불렀다.
그의 기도는 마침내 응답이 왔다. 동굴속에서 좌선하여 선정에 들었을 때, 금빛 찬란한 후광속에 관세음보살을 영접하게 되었다. 관세음보살은 눈빛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왼손에는 감로수병인 정병(淨甁)을 들고 있었고, 오른 손에는 푸른 버드나무가지를 들고서 허공에 서 있었다. 관음보살은 자비로운 미소속에 이렇게 부촉했다.
“검단선사. 말세중생을 구제하려는 제불보살의 뜻을 전하오. 말세의 유주무주(有主無主)영혼을 천도할 수 있는 지장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지장도량을 만들어 주시오. 인연의 때가 도래하였소.”
검단선사는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는 감격스러움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합장하여 지성으로 세 번 예배를 드리고, 합장한 채 무릎꿇고 거룩한 관세음보살을 우러르며 여쭈었다.
“말세중생이 의지하고 영혼천도를 할 지장도량은 어느 곳이옵니까?
“서해안에 있는 도솔산(兜率山)이오. 그 도솔산을 말세의 지장도량의 성지로 개산 하여 중생을 인도하여 주시오.”
“부족한 제자, 사명을 받아 신명을 바쳐 명을 받들어 도솔산을 기필코 지장도량으로 개산하겠다는 것을 서원 드리옵니다.”
관세음보살은 이어서 말했다.
“선재선재로다. 그러나, 도솔산에 지장도량으로 개산 하려면 두 가지 어려운 관문을 극복해야 하오. 그 관문을 극복하려면 자칫 검단선사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가 있소. 그래도 할 수 있겠소?”
“제자, 생사를 초월하여 반드시 도솔산에 지장도량을 개산 하겠다는 것을 거듭거듭 서원드리옵니다. 두 가지 어려운 관문은 무엇을 두고 말씀하시는지요?”
“첫째, 도솔산 입구의 터전에는 지금 사나운 산적들이 떼지어 살고 있소.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을 파리 죽이듯 죽이는 사나운 자들이오. 그들을 악에서부터 선으로 교화하여 그곳을 떠나게 해야 하오. 그들이 떠나면, 그곳에 대웅보전을 세워 지장도량을 증명해야 하오. 둘째, 말세의 지장도량이 들어설 성지인 도솔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있는 바위산의 그 곳에는 용이 되려고 수행하다가 승천하지 못한 사나운 암 이무기 한 마리가 살고 있소. 그 이무기는 악심을 품고, 인간들에게 악행을 자행하고 있소. 이무기는 오랜세월 정(定)을 닦아서 작은 신통력을 얻었소. 사람을 무척 싫어해서 사람이 접근하면 풍운조화를 부려서 가까히 오면 신통력으로 사람에게 겁을 주어 내쫓고, 심지어 잡아먹기도 하오. 그 이무기를 악에서 선으로 교화하여 떠나게 해야 하오.
부족한 제자, 반드시 이무기를 선으로 인도하겠사옵니다.
관음보살은 이어서 말했다.그다음 이무기의 터전인 바위산 가운데 청정하고 적멸한 도량을 골라 지장보살을 봉안하여 지장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도량을 만들어야 하오. 하시겠소?”
“신명을 바쳐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운 미소속에 다시 말씀했다.
“선재, 선재라. 원력이 있는 곳에는 불보살의 가호가 있는 법이오. 생사의 위기에 처하면 내가 불러주는 진언을 외우시오. 그대를 구원할 것이오.”
관세음보살은 큰소리로 진언을 불러주었다.
‘관세음보살 보검수진언(寶劒手眞言) 옴 데세데야 도미니 도데 삿다야 훔바탁.’
관세음보살은 간곡한 부촉의 말씀을 남기고는 금빛광채를 뿌리며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검단선사는 선정에서 일어나 감격속에 마음속으로 고해중생의 복전을 만들어 내겠다는 불퇴전의 원력을 다지었다. 검단선사는 그 날 동굴에서 나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관세음보살의 명호정근을 하면서 인연의 땅인 도솔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 날, 도솔산의 산적떼들은 약탈에 성공하여 북, 징, 괭가리를 치면서 술을 마시고 자축연을 벌이고 있었고, 이무기는 접근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 조화를 부려 바람을 일으키어 흙과 돌을 날리고 있었다.
현재 24교구 본사 선운사의 소재지는 현재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해당된다. 하지만 그 옛날 당시에는 삼인리는 삼인골로서 불리웠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보이는 첩첩산중의 울창한 숲속이어서 관리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삼인골에는 수백의 산적들이 왕권을 거부하면서 떼지어 산적마을을 이루어 숨어살고 있었다. 산적들은 밤이면 원행을 하며 먼곳의 부락을 불시에 습격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그것은 산적들의 생업이었다. 선적들은 약탈에 성공한 다음날에는 모두 빈터에 둘러앉아 빈터 가운데에 돼지, 노루 등을 통채로 불에 구워 먹으면서 술에 취해서 남녀간에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며 흥겹게 놀았다.
산적 두목은 용맹한 자로서 장호(張虎)였다. 거구에 장비같은 수염을 가졌으며, 그는 큰 도끼를 마른 나무가지 휘두르듯 하여 상대를 찍어 살상했다. 부두목으로서는 장호의 친동생인 장표(張豹)였다. 그는 창술의 달인이었다. 두 형제는 호랑이 같고, 표범 같아서 수하 산적들은 절대 복종하였다.
그러나, 용맹무쌍한 장호와 장표도 두려움을 주는 곳은 있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10리 길은 족히 되는 지금의 도솔암 근처에는 얼씬하지도 않고 두려워했다. 그곳에는 기둥 굵기의 용이 못된 암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무기는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이면 바위산에 징그러운 몸을 드러내어 떠오르는 해를 우러르며 태양의 기운을 흡수하려고 정성를 들였다. 달이 밝은 밤이면 미인으로 둔갑하여 바위에 정좌하여 앉았다. 그녀는 무슨 원한이 있는지 달을 우러르며 뜨거운 눈물로 양볼을 적시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그녀는 무섭고 잔인했다. 자신이 사는 소굴 근처에 사람의 기척이 있을 것 같으면 그녀의 눈과 얼굴은 무섭게 변하고, 풍운조화를 부렸다. 갑자기 기암괴석의 사이에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피워 오르고, 일진광풍이 불어서 돌멩이와 모래를 날리고, 번개와 비를 불렀다. 이무기의 소굴 근처에 발을 잘못 딛은 인간은 내쫓고 죽이기도 했다.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보존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무서운 이무기의 소문은 공포 자체로 세상에 전해졌다.
어느 달 밝은 밤, 술에 얼근한 장호와 장표는 소문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려고 도끼와 창을 들고서 금역의 이무기의 구역을 숨어들어 갔다. 두 형제는 큰 도끼와 창을 휘두르면서 두려운 것이 없다고 호언했다. 이무기를 찾아 헤매든 장호, 장표 두 형제는 마침내 어느 바위 위에 고운 옷을 입은 삼십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자가 홀로 바위 위에 앉아서 달을 우러르며 혼자 흐느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표가 형에게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다.
“형, 무서운 이무기가 아니고 미인인데? 왜 미인을 이무기라고 했을까?”
“글쎄다. 굉장한 미인인데. 이무기는 헛소문인게야.”
“형, 저 여자 잡아다 형수 삼으면 어떨까?”
“기특하구나. 너는 언제나 내 생각을 해주는구나. 허나 나는 여자가 둘이니 여자 없는 너를 위해서 내가 제수씨를 삼아주마.”
“형, 고마워. 역시 형이 제일이야.”
장호가 그녀에게 뚜벅뚜벅 걸어 다가서면서 큰소리로 말을 걸었다.
“여보시오.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리 슬피 우는 거요?”
갑자기 나타난 인간으로 인해 그녀는 깜짝 놀라는 얼굴이더니 벌떡 일어나서 이내 싸늘하면서 화를 품은 얼굴이 되어 쏘아보더니 앙칼지게 외쳤다.
“네 놈들은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서 더러운 주둥이를 놀리는 것이냐? 죽고 싶어서 왔느냐?”
장호는 화가 치밀어서 큰도끼를 오른손에 쥐고서 도끼로 그녀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뭐? 주둥이? 제수씨를 삼으렸더니 성깔이 못쓰겠구먼. 너 이 도끼로 왕생을 시켜줄까? 네 년 이름이 무엇이냐?”
“죽을놈이 남의 여자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네가 이곳을 금역인 이곳을 침범했으니 죽어주어야 하겠다!
순간, 여자가 날아오르듯 몸을 솟구치더니 두 손을 갈퀴처럼 하여 장호의 멱줄을 따려는 듯 덮쳐왔다. 그녀의 손톱은 호랑이 발톱처럼 무섭게 변해 있었다. 두 형제는 기겁을 하여 힘을 다해 형은 큰 도끼를 휘두르고, 동생은 창을 들어 그녀를 공격했다. 둥근 달빛 아래 적멸의 바위 위에서는 사나운 미인 하나를 상대하여 두 사내가 뛰고, 뒹글고, 피하면서 큰도끼와 창을 들어 인정사정 없이 찍고, 베고, 찔렀지만. 오히려 두 형제가 그녀의 무서운 손톱에 옷이 찢기어 몸의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는 딱한 신세가 되었다. 급기야는 얼굴까지 할퀴어 피가 흘렀다. 두 형제는 불맞은 범처럼 날뛰었으나 적수가 못되었다.
악귀나찰처럼 무섭게 싸우든 그녀는 싸움을 잠시 멈추고 서서 두 형제를 무섭게 응시하며 두 손으로 결인(結印)을 하고 주문을 외웠다. 갑자기 일진 광풍이 일면서 모래바람을 일으키어 두 형제의 눈을 못뜨게 만들었다. 두형제가 패색이 짙은 가운데 손으로 두 눈으로 부비는 순간, 여자의 제비처럼 날아들어 손톱은 두 형제의 가슴을 찍고, 찢어 발겼다. 이어서 발로 전광석화처럼 차버렸다. 두형제는 순식간에 공이 튀듯이 바위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두 형제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걸음아 날 살려라, 상처입은 토끼처럼 정신없이 달아났다. 그녀는 달아나는 두 형제를 보면서 하늘로 얼굴을 치켜올리고서 홍소를 터뜨리고 말했다.
“내가 사는 이곳에 이 세상 누구든 들어온다면 나는 반드시 죽여버릴 것이야….”
장호, 장표 두형제는 한 달 후에나 겨우 거동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다시는 그곳에 가서 미인을 붙잡아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장호가 방안에 누워 쉬는데, 장표가 문짝을 열어 들어오며 다급한 보고를 했다.
“형님, 웬 중이 삼인골 동굴에 와 있으면서 형님을 한답니다.
장호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어디서 온 작자야? 관군의 정탐꾼이 아닐까?”
“형님, 관군들이 우리의 소굴을 찾기에 혈안이라는 보고가 있어요. 관군이 불시에 쳐들어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떼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정탐꾼을 조심해야 합니다.
암, 조심해야지. 동생과 함께 가서 그 승려를 만나서 정탐꾼인지 아닌지 살펴보자. 만약 정탐꾼이면 나의 도끼와 아우의 창맛을 보여주기로하자.
장표는 창으로 푹 쑤시는 흉내를 내며 사납게 말했다.
“가짜 승려라면 바로 이 차으로 왕생을 시켜버려야지!”
장호가 다시 말했다.
“우리의 산채의 소재지는 절대 비밀이어야 해. 자, 그 중을 찾아보세.”
검단선사는 지금의 선운사 앞산 너머에 있는 천연동굴(현재는 무속인이 차지하고 있음)에 당도하여 행장을 풀고 좌정하여 두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 때, 장호 형제가 도끼와 창을 들고서 눈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험악한 인상을 짓고 석굴 안으로 들어와 검단선사를 겁을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위엄이 넘치는 승려를 보고서는 주춤하였다. 그러나 장호는 도끼를 힘껏 쥐면서 두눈을 부릅뜨고 시비조로 말했다.
“이봐, 어디서 온 중이야? 왜 우리를 찾지? 당신 진짜 중이 맞아? 관군의 정탐꾼이 아니여? 점탐꾼 같으면 우리의 도끼와 창맛을 보고 왕생극락을 해야겠지?”
검단선사는 그들의 속셈을 간파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무량대복을 지으라고 찾았네.
장표는 창을 들고 으르렁 거리는데, 장호가 이맛살을 지푸리며 말했다.
무슨 시덥잖은 소리요? 뭐, 복을 지으라구? 쌀됫박이라도 시주를 하라는 말씀인가?
검단선사는 미소속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자비롭게 건네보며 다시 말했다.
영원한 복을 지으라는 것일세.
이번에는 장표가 사납게 말했다.
우리는 시주할 사람이 아니요, 동냥을 얻고져 한다면 어서 이곳을 떠나시요. 여기는 우리들의 산채가 가까운 곳이니, 낯선 자는 살 수 없소!
검단선사는 달래듯 말했다.
“마음이 자비로 충만하면 극락이 따로 없고, 마음이 악귀 같으면 지옥이 따로 없는 법이오. 우리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서 대화를 해봅시다. 나는 결코 관군의 정탐꾼이 아닌 부처님의 제자라오.”
검단선사는 두 형제를 따뜻히 대하면서 설법을 하기 시작했다. 산적형제는 점점 검단선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되었다. 두 형제는 정탐꾼이 아닌 진짜 수도승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두 형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구동성으로 차갑게 내뱉었다.
“결론은, 우리의 산채 터에 부처님을 모실 사찰을 지으시겠다고요? 저희들도 부처님은 존경합니다만, 그것은 안될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터전을 내주고 우리들은 어디로 가지요? 갈 곳이 없어요! 우리는 정든 터전을 비워줄 수 없으니 포기하고 떠나시요. 경고합니다. 다음에 올 때에 떠나지 않았을 때는 도끼 맛을 보게 될 꺼요.”
두 형제는 눈을 부라리고 도끼와 창을 무섭게 휘둘러 보이면서 떠나갈 뿐이었다.
그 무렵, 서해안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잔잔한 서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뉘엿뉘엿 수평선 너머로 기울고 있는 어느 날 석양이었다. 낙조를 전신에 받으며 갯벌을 도구로 파헤치며 조개를 줍고 있는 아낙네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서해는 간만(干滿)의 차가 심하다. 해질 무렵이면 썰물 때여서 눈이 아물거릴 만큼 먼 곳까지 갯벌이 드러난다.
이 때를 맞추어 가난한 바닷가 동네의 아낙네들은 갯벌에 조개를 주으러 나온다. 부지런히 도구로 갯벌을 파헤쳐 조개를 줍던 한 아낙네가 손으로 바다 쪽을 가르키며 외쳤다.
저기를 봐 이상한 배가 다가오고 있어.
뭐야?”
조개를 줍던 아낙네들이 모두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배 같은 물체가 갯벌 가까운 바다 위에 떠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 아낙네가 외쳤다. “배 아냐?”
다른 아낙네가 말했다.
“무슨 배가 저럴까? 난생 처음 보는 배야.”
아낙네들은 일어나 각기 호미를 든 채 왁작지껄 하면서 배 있는 가까이로 접근해갔다. 그 물체는 분명히 배였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생전처음 보는 돌(石)로 만든 배였다. 사람들이 그 배에 가까이 가면 그 배는 사람들을 피하듯 바다로 물러가고,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면 배는 해변으로 다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배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낙네들이 돌배에 다가서려면 돌배는 피하듯 스르르 뒤로 물러서 범접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상한 돌배가 서해 바다로 떠 들어왔다.”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순식간에 사방에 퍼졌다.
돌배가 나타난 갯마을에서 산을 몇 개를 넘으면 삼인골인데 그곳에도 이상한 돌배의 소문은 신비스럽게 퍼졌다. 산적들도 소문을 들었고, 동굴속의 검단선사도 소문을 들었다. 검단선사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돌배가 있는 곳으로 길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산적들과 갯마을 사람들도 모두 돌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돌배는 여전히 사람을 기피하듯 피하여 물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이상한 돌배를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검단선사가 도착했다. 괴이한 돌배를 멀리서 응시하던 검단선사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돌배를 향해 갯벌에 들어갔다. 검단선사는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간절히 부르면서 갯벌에 발목을 푹푹 빠지면서 돌배로 다가갔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장호, 장표는 비웃는 소리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뭐하는 거야? 피하는 돌배를 잡겠다고? 결국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죽고 말꺼야.
두 형제는 마음껏 비웃었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을 피한다는 돌배가 검단선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질렀다. 검단선사는 돌배위로 올라갔다. 배에는 사람은 없었고, 배안에는 단정한 모습의 금빛 지장보살상이 실려 있을 뿐이었다.
검단선사는 지장상을 향해 큰절로 예배를 하고 좌정하여 관세음보살에게 지장상이 온 뜻을 알기 위해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기도정근을 시작했다. 검단선사의 눈앞에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이 홀연히 나타나서 말씀했다.
“검단선사는 들으시오. 돌배의 지장보살상은 말세의 지장도량을 위해 서천 서역국으로부터 모셔온 것이오. 하루 속히 도솔산에 봉안하도록 하시오.”
산적들과 갯마을 사람들은 신기한 검단선사의 일을 보고 마음에 감동이 왔다. 그들은 검단선사에 대한 존경심이 솟수치었다.
검단선사는 소리쳐 산적들과 갯마을 사람들을 불러 힘을 합쳐 지장보살상을 육지에 옮기었다. 지장보살상을 옮기자 돌배는 사명을 다한듯 스스로 물러서더니 서해로 사라졌다.
검단선사는 우선 지장상을 우로를 피하기 위해 임시거처에서 모시고 정성을 다하였다. 어느 날, 장호와 장표는 어느 날, 도끼와 창을 들고서 검단선사가 머물고 있는 동굴을 찾았다. 산적형제는 검단선사에게 시비를 걸어 동굴에서 내쫓으려고 찾아간 것이다. 장호가 사납게 검단선사에게 말했다.
“스님께 술 한잔 걸게 대접받으면 산채를 넘겨주는 것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승려에게 무슨 술이 있겠소?”
“그렇다면 오늘 스님을 당장 이곳에서 내쫓겠습니다.”
산적형제는 도끼와 창을 거머쥐고 당장 떠나라고 으르렁 거렸다. 검단선사는 미몽과 탐욕으로 가득찬 산적들을 교화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으로만 교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방편이 필요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장호에게 시원스럽게 말했다.
“밤이 되면 내가 걸게 술대접을 하면 아니 되겠소?”
두 형제는 반색을 하고서 반기었다. 그들은 밤을 고대하면서 검단선사가 머무는 동굴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검단선사는 두 형제에게 말했다.
내가 기막힌 술대접을 하겠네. 준비가 되었으니 나를 따르게.
검단선사는 산적 형제를 데리고 동굴을 나섰다. 산적형제는 의아심속에서 검단선사의 뒤를 따랐다. 두 형제는 컴컴한 산길을 더듬어 가다시피 걷는데 산적형제의 눈앞에 처음 보는 솟을대문과 웅장한 전각들이 나타났다. 장표가 웅장한 전각들을 보고 놀라면서 장호에게 말했다.
“형님, 언제 이 골짜기에 언제 이러한 전각들이 있었지요?”
“글쎄, 나도 처음 보는 집이구나. 굉장한데? 돈이 많겠지?”
검단선사는 말없이 솟을 대문을 활짝 열어 산적형제를 사랑채로 안내했다. 사랑채의 방안에 들어서니 촛불이 여러개 밝혀졌으며 방 가운데는 상다리가 부러질 듯 미주가효(美酒佳肴)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두 명의 미인이 붉은 한복과 노란 한복을 입고서 나타나 검단선사에게 공손히 큰절을 올리며 아뢰었다.
“말씀하신 대로 주연을 준비하였사오니 맛있게 잡수시기 바랍니다.”
산적형제는 두 미인을 보고서 혼이 빠진 듯 했다. 생전처음보는 천상의 선녀와 같은 미인이었다. 두 형제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입을 딱 벌리고 군침을 흘렸다. 두 미인은 함박 미소를 머금고 산적형제의 술잔에 술을 가득가득 부어주고 또 부어주며 권했다. 미인이 주는 술에 대취한 산적형제가 눈을 크게 뜨고 검단선사를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장호가 대취하여 말했다.
“아우야, 대사가 눈치 한 번 빠르구나. 우리를 위해 자리를 비껴주었어.히히히.”
“형님, 대사가 떠난 것 같으니 우리도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너는 어찌 그리도 우둔하냐? 미인이 둘이니 하나씩 책임을 져야지.”
산적형제는 술에 취해 각기 미인의 손을 잡자마자 혼곤히 잠이 들어 버렸다. 그 때, 징, 소리 나팔소리, 북소리가 귀청이 떠나가라 요란하게 들리더니 관군들이 병장기를 들고 무수히 들이닥쳤다. 산적형제는 용 한번 써 보지 못하고 관군에게 포박되고 말았다. 관군의 장수는 칼을 뽑아들고 호령했다.
“여봐라, 무고한 양민을 살상하면서 재물을 강탈하는 산적들은 모두 목을 베어라!”
산적형제는 죽음에 임박하여 크게 후회하면서 관군의 장수에게 울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저희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시면 다시는 산적노릇을 하지 않을 맹세하옵니다. 한 번 만 살려주십시요.”
장수는 꾸짖어 외쳤다.
“너희같은 산적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헛소리 말고 목을 늘이거라!”
“제발, 저희를 믿어 주세요.”
두 형제는 아이처럼 울부짖으며 애소했다. 하지만, 관군장수는 이렇게 외치며 청룡도를 높이 쳐들었다.
네 놈들이 그동안 양민들을 수없이 죽여왔으니 어찌 인과응보를 피할 수 있겠느냐!
관군장수는 청룡도를 들어서 산적형제의 목을 가차없이 베어 버렸다. 관군장수의 기합소리와 함께 청룡도의 칼날이 두 형제의 목에 닿는 순간, 두 형제는 아악! 처참한 절규의 비명을 네질렀다. 순간, 두 형제는 똑같이 눈을 떴다. 두형제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의복은 식은땀에 흠뻑 젖었다. 그들은 손을 들어 칼맞은 목덜미를 만져보니 석굴의 천정에서 차가운 물이 떨어져 있었다. 그곳은 솟을대문이 있는 잔치집이 아닌 동굴이었다.
그 때 검단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 재생의 기회가 있으면 다시는 산적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애걸복걸했지? 죽기가 싫지?”
산적형제는 그제서야 검단선사가 신통력으로써 깨달음을 준 것을 알았다. 산적형제는 도끼와 창을 버리고 검단선사에게 큰절을 올리고 저간의 무례를 참회하면서 사죄하고 재생의 길을 물었다.
대선사님, 부디, 아둔한 중생의 재생의 길을 가르켜 주소서.
검단선사는 껄껄 웃으며 대담했다.
“중생이 마음 한 번 바꾸면 부처도 되는 법이라네. 여러분이 양민으로써 일하며 살 수 있는 터전을 보아 두었지. 내가 여러분에게 호구지책으로 소금 굽는 방법을 가르켜 드리겠네.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게. 여러분이 지은 죄는 인과의 업보가 되어 세세생생 피할 수 없는 것이라네. 과거를 뉘우치고 소금 굽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 여생을 살면서 세상에 착한 일로 보은하게. 알겠는가?”
마침내 검단선사는 산적, 모두를 지금의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삼인골에서 고창군 심원면의 바닷가 마을로 집단 이주를 시키고 소금 굽는 방법을 가르키었다. 마침내 산적들은 이주하여 소금 굽는 양민이 되었다. 그 때 양민이 된 사람들은 검단선사의 자비의 은혜를 기리는 마음에서 마을 이름을 검단리(黔丹里)라고 명명하였다. 그들은 해마다 소금을 거두는 철이면 검단선사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선운사에 무상보시를 하였고, 그 불문율은 수백년간 지켜 전해왔다.
검단선사는 두번째 관문인 지금의 도솔암 근처에 살고 있는 이무기를 찾아 나섰다. 지금의 도솔암 건너편의 천길바위 절벽 위에 소복을 입은 여자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자신의 금역을 당당히 걸어들어 오는 검단선사를 내려 보면서 사남게 투덜대었다.
저 자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닌가.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인정사정 없이 내쫓야지.
암이무기는 주문을 외워 검은 구름을 부르고,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를 일으키고, 또 일진광풍을 일으켜 돌멩이와 모래를 뿌리고, 급기야는 뇌성과 함께 장대비를 쏟아지게 하면서 공포를 조성, 위협하여 내쫓으려 들었다.
그라나 검단선사는 굴복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할 뿐이었다. 암이무기는 기가 막혀 더욱 무섭게 이를 악 물었다.마침내 검단선사는 풍운조화를 부리는 그녀 앞에 당당히 서게 되었다. 그녀는 천길 바위 위에서 짙은 안개 속에 소복단장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면서 얼음짱같은 얼굴로 차가운 눈빛으로 검단선사를 쏘아보았다. 검단선사는 그녀에게 간곡히 말했다.
“천년의 수행을 잘하여 용으로 승천하여 고해중생을 돕는 용이 되지 않고 어찌 사악한 이무기가 되어 중생을 해롭게 하는가! 인과의 업보가 무서운 것을 모르는가!
암이무기는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이곳은 내 남편과 살든 정든 터전이요. 이곳에 들어오면 누구든 살아나갈 수 없다는 소문은 못들었나? 부처님의 제자라고 해서 끝까지 봐 줄 수는 없으니 당장 따니시요!
검단선사는 자비롭게 미소하며 말했다.
이제 이곳은 말세 고해중생의 영혼을 천도해주는 지장보살님의 진신이 상주해야 하는 지장성지로 개산해야 하오. 그대는 이곳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곳을 떠나 새로운 수행처로 떠나시오.”
짙은 안개를 피우는 소복단장의 미인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부처님의 제자라고 해서 내가 잡아먹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되지.”
그녀는 순식간에 이무기의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기둥 만한 이무기는 뻘건 혀를 날름거렸다. 이무기는 입을 크게 벌려 무서운 독아(毒牙)로 검단선사를 한 입에 삼키려고 달려들었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 때, 검단선사는 바위에 정좌하여 가슴에 합장하고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이 담긴 보검수진언을 큰소리로 외웠다.
옴 데세데야 도미니 도데 삿다야 훔바탁
진언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우주를 지키는 팔만사천의 신장을 지휘하는 수신장(首神將)이요, 보살인 동진보살이 금빛 갑옷을 입고, 보검을 들고 무수한 신장들과 함께 나타났다. 신장들은 동진보살의 지휘로 순식간에 이무기를 겹겹히 포위했다. 이무기의 주술은 허무하게 깨져 버렸다. 이무기는 소복단장의 여인으로 둔갑하여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신장들에게 포박되었다. 이무기는 눈물을 흘리면서 검던선사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그녀는 애소하였다.
“저는 원래 소녀 시절에 장차 짝을 이루기로 맹세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선업의 선정을 닦아 훗날 함께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용으로 승천하자고 굳게 맹세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사냥꾼이 저의 짝이 될 소년을 화살로 죽여 버렸습니다. 인간에 대해 아무런 해악을 끼친 바도 없는데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창졸간에 짝을 잃은 저의 가슴에는 인간에 대한 원한이 사무치어 선업의 선정을 닦는 초심을 버리고, 오직 원한의 복수의 일념으로 인간을 죽였습니다. 저의 죄는 바다와 같아 참회하고 싶어도 어찌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때, 무수한 신장은 사라지고, 금빛 광명 속에 백의를 입은 관세음보살이 자비로운 모습을 나타내었다 관세음보살은 버드나무 가지를 정병속에 담아 감로수를 묻힌 다음에 소복한 여인의 머리에 관정(灌頂)하면서 대자대비의 교시를 주시었다.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연은 하나도 없느니라. 모두 자신이 지은 업에서 이루어지느니라. 네가 오매불망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너의 짝의 죽음도 모두 정업에 의한 것이니, 이제 너는 원한의 마음을 씻고, 마음을 돌이키어 부처님께 참회하고 귀의하여 수행하라. 대자대비로서 기회를 주겠노라. 이 도량은 검단선사에게 맡기고, 너는 새로운 각오로 너의 수행처인 고창 방장산(方丈山)으로 떠나거라. 그곳에는 네가 수행할 용연(龍淵)이 있느니라. 일심으로 수행하여 승천하는 용이 되고, 용이 되어 이 지역의 중생의 인과에 따라 고루 비를 내려 공덕을 쌓거라 그 길이 네가 지은 업보로 영원히 받게 되는 초열지옥의 고통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라. 내 말에 따르겠느냐?”
소복단장의 여인은 깨달음을 얻어 관세음보살로부터 재생의 교시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소복단장의 여인은 금빛 광명속에 하늘로 사라지는 관세음보살을 향해 참회의 눈물로 양볼을 적시면서 합장하여 무수히 배례를 드리었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살면서 애달픈 사랑의 추억이 깃든 도솔산의 바위들을 정겨운 눈으로 두루 보았다. 그리고 검단선사를 향해 서글픈 미속속에 작별의 합장 인사를 정중히 드렸다.
대사님의 원력대로 저의 터전에 말세중생의 영혼천도의 성지를 마련해주세요. 저는 이제 이곳을 떠나 방장산 용연으로 미련없이 떠나가 수행에 전념하겠사옵니다.그녀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치고 양 손으로 결인을 하고 주문을 외었다. 적멸의 하늘에 거센 바람이 일었다. 그녀의 옷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구름이 몰려오고, 어두워졌다. 우르르 쾅! 뇌성이 울리면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마침내;어두운 하늘에서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 빗속에 그녀는 순간 땅을 박차고 훌쩍 구름속에 뛰어 오르며, 그녀의 진신인 거대한 이무기의 몸을 들어 내었다.
그 때, 도솔산은 지진이 일듯 진동하였다. 암이무기는 그녀는 검단선사의 머리위를 세 번 날아돌며 도솔산이 흔들리도록 소리쳐 경의를 표하고, 지금의 고창, 방장산으로 날아갔다. 그곳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용연(龍淵)이 있어 그녀를 만날 인연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암이무기가 도솔산을 떠날 때, 흔적을 남겼다. 암이무기는 도솔산의 바위에 뻥 하니 굴을 뚫어 버린 것이다.그날의 이무기가 뚫은 굴은 그 후, 사람들은 도솔산의 용문굴(龍門窟)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용문굴은 지금의 도솔암의 윗쪽의 바위에 있다. 지금도 바위굴에는 이무기의 비늘자욱을 볼 수 있다.
이무기는 훗날, 수행을 잘하여 용으로 승천하였는데 승천하는 모습이 장관이어서 지금도 방장산 기슭의 촌노들은 용의 승천을 목격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침내 검단선사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산적이 살던 곳에는 선운사를 창건하였고, 이무기가 조화를 부리며 살든 곳에는 도솔암 인연의 바위위에 지장보살의 진신상주를 의미하는 지장보살상을 모시었다. 드디어 도솔산에 말세중생의 영혼을 천도하는 지장성지가 개산된 것이다. 그 때 부터 수많은 중생들은 유주무주 애혼고혼의 천도를 위해 지장보살의 진신이 상주하여 영험속에 영혼을 인도하는 도솔산으로 순례의 길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후, 검단선사는 소금을 굽는 양민들과 함께 나무를 베어 갯벌속에 무수히 깊이 파묻었다. 검단선사가 파묻은 갯벌속의 그 나무는 오랜세월에 의해 지구상에 가장 좋은 천연의 향인 침향(沈香)으로 변화 하였다. 서해안에는 천년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검단선사의 침향이 일정한 시기를 두고 바다에 떠오른다. 갯마을의 사람들은 침향이 떠오르면 선운사와 도솔암에 바쳤다. 검단선사는 자신은 죽어도 자신이 만든 침향으로 영원히 지장도량의 불보살께 헌향(獻香)을 하고 싶었든 것이다.
그 해, 첫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오전, 검단선사는 자신의 선실에서 수명이 다했음을 깨닫고, 그를 따르던 사부대중을 불러 아래와 같이 부촉 하였다고 전한다.
“나의 육신은 제행무상에 의해 멸하지만, 영혼은 도솔산의 산신이 되어 영원히 말세 고해중생의 지장도량을 지키겠다.
도솔산의 승려들이여, 뼈를 깎는 수행정진으로 정각을 이루고, 오직 고해중생을 위해 헌신할 때 말세 불법은 도솔산에서 일어난다.
도솔산의 승려들이여, 제행은 무상하니 방일하지 말고 촌음을 아끼어 수행정진하고, 중생을 위해 자비를 실천하라!”
그는 부촉을 남기고, 자신을 애도하는 열반종 소리를 들으면서 호흡을 끊어 대적멸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러나, 말세의 지장도량인 선운사와 기도처인 도솔암이 존재하는 한 검단선사의 공덕은 영원히 칭송 받을 것이다. 후세인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오직 고해중생을 구제하려는 원력을 세운 검단선사를 기리고, 유언을 봉대하여 선운사 영산보전 뒤의 동백숲이 울창한 아름다운 곳에 작은 산신각을 만들어 검단선사의 진영을 모시었다.
이 이야기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소재한 선운사의 전설이다. 전설은 신기하고, 아름답고, 슬프고, 허황하기도 보이지만, 내재한 깊은 뜻은 만법귀일(萬法歸一)의 뜻처럼 일체중생의 권선징악으로 인도하기 위한 배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영혼천도를 위해 도솔암을 찾을 때, 반드시 동백숲속의 검단선사의 진영을 찾아 예배하기를 권장한다.
검단선사의 진영 앞에서 은혜를 칭송하면서 향하나를 피워 시주하고 예배하고 기도한다면, 자비로운 검단선사는 반드시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모르게 닥치는 불행을 막아주고, 건강속에 행운을 주시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눈속에 피운 피빛같은 동백꽃을 감상하면서, 아득한, 도솔암의 이무기, 사랑를 이루지 못한 용녀의 슬픔에 동정해주기를 권장한다.
아아,고해바다에 첫사랑의 인연을 이루지 못한 슬픔이 어찌 인간뿐이겠는가?*
(2003년7월15일새벽2시30분, 치악산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