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앞에서는 양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개고기 받아와서 판다"는 불만을 표시.
작금 여권 집행부의 내전 확산이 접입가경(漸入佳境 가면 갈수록 경치(景致)가 더해진다는 뜻으로, 일이 점점 더 재미있는 지경(地境)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로 쓰임) 또다시 대형 악재를 만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언급하며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공개되는 '돌발 사고'가 터진 것이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이 대표에 대한 윤리위의 징계 국면에서 이른바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의 향배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윤 대통령은 당 내홍 문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가 결정된 지난 8일에도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다"면서도 "대통령으로서 당무에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거리를 뒀다. 윤리위 징계 이후 이 대표는 전국을 돌려 장외 여론전에 나섰고, 국민의힘 내부에선 향후 체제 정비 방식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에게 불만이 쌓인 듯한 윤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가 노출됨에 따라 '윤심' 논란과 함께 이 대표의 징계 국면에서 촉발된 내홍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물밑에서 꿈틀대던 당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권 대행은 "저의 부주의로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 내용이 노출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문자 노출 경위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이) 저를 위로하려 일부에서 회자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그간 이 대표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낸 적이 없고, 징계 등을 둘러싼 당내 상황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도 "당무는 당 지도부가 알아서 꾸려나갈 일이고, 윤 대통령이 일일이 지침을 주는 일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것으로 상황이 정리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 중진 의원은 연합뉴스에 "당 지도부가 용산(대통령실)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거나, 용산의 하명을 수행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보지 않겠나"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청년 정치인들도 "대통령의 성공과 국민의힘의 변화를 바라는 청년들의 염원이 담긴 쓴소리와 성장통을 어찌 내부총질이라고 단순화할 수 있나"(박민영 대변인), "대통령이 당대표를 싫어했다는 소문이 원치 않은 방식과 타이밍에 방증된 것 같아 유감스럽다"(김용태 최고위원) 등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는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인 글이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
경위야 어찌 됐건 권 대행이 또다시 분란을 일으킨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국정의 무한책임을 가진 집권당 수장으로서 사소한 실수라도 늘 경계해야 할 터인데, 저간의 사정을 보면 권 대행은 잇단 '헛발질'로 리더십 논란을 자초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합의했다가 당내 반발로 파기하면서 정국 경색을 자초한 데 이어 대통령실 9급 공무원 채용 관련 발언 등으로 잇따라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과의 사적 대화를 노출한 '부주의'와 별도로 한 가지 더 짚어볼 것은 그가 윤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다.
권 대행은 윤 대통령의 문자에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했는데, 다소 수직적인 관계로 보이는 측면이 없지 않다. 앞서 그는 원내대표 출마를 전후해 "대통령에게도 할 말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대국민 약속이었다. 집권 초에다 여소야대의 국회 등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에 여당이 대통령과 뜻을 모아 국정을 제대로 이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청와대 출장소' 시절로 회귀해서는 곤란하다.
문자 노출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최소한 현 정부의 지지도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관계가 순탄치 않았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입당 과정에서 신경전이 있었고, 대선 기간에는 이 대표가 두 차례 당무를 거부하며 윤 대통령의 속을 태웠다.
지난 6·1 지방선거 이후에도 이 대표와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의 충돌은 그치지 않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7일 윤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에 대해 "대통령도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는 인지상정이라는 얘기인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가 지도자라면 '신독'(愼獨. 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의 덕목을 좇아야 한다
이 대표는 이날 "앞에서는 양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개고기 받아와서 판다"는 '양두구육' 논법으로 불만을 표시했는데, 이런 식의 대응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본인도 잘 알 것이다. 집권 세력이 집안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민생과 경제, 안보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