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제도와 사교육의 심화, 끝을 모르고 벌어지는 교육 격차라고 확신.
대한민국은 학력[學歷]과 학벌[學閥]사회이다. 하지만 학력[學歷]과 학벌[學閥]은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학력[學歷]은 학교를 다닌 경력. 최종 학력을 말하며. 학벌[學閥]은 학문을 닦아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 출신 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사회적 지위나 등급(사전)을 뜻한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은 개인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이며, 실제로 취업이나 결혼과 같은 인생의 중요한 사건에서 일을 좌지우지하는 무게감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그런 사회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은 ‘좋은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졸업했다면 그 사람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사회다. 반대로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고 학창 시절 성적도 나빴다면, 그 사람은 낮은 임금을 받아 마땅한 무능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사회다.
한국은 유독 학벌제에 민감하다. 외국에서는 성적과 대학에 연연하지 않고 개인의 특기와 적성에 맞는 교육을 펼쳐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를 만들어내고 있고, 또 모두가 같은 교육을 받는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특정 분야에서 빛날 수 있는 인재를 놓치는 것도 방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꾸준히 소개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따라가기 위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지지부진하다. 한국은 여전히 성적으로 줄을 세워, 앞에서부터 ‘좋은 대학’이라는 타이틀의 학교로 차례차례 입학시킨다.
지금까지 쌓아온 한국의 학벌제와 학연은 너무나 견고하고, 그렇기에 무너졌을 때의 홍수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두려움은 가진 것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온다.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적과 대학이 곧 자신들의 업적이며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때문에 자녀의 성적에 집착하고, 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쩌면 학생보다 더 열심히 뛴다. 사교육비가 하늘을 찌르고 ‘명문 학원’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질 않으며, 입시 전략을 위한 강의에 학생보다 학부모가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은 이런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을 통해 이뤄낸 학벌이 의미를 잃도록 두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로는 자녀에게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주고 여러 가지 일을 접해보도록 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하는 일이 허다하다. 자녀가 해외여행을 통해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고 낯선 사람과 마주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지만, 이는 취업 자소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스펙’ 중 하나로 남고 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항간에 이런 주장이 있었다. ‘대학을 모두 평준화하고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학생들을 입학시키자.’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발을 샀다. 이는 앞서 소개한 학벌제의 붕괴가 날것으로 주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 성적이 좋은 학생이 성적이 나쁜 학생과 같은 학교에서 같은 강의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견고한 벽이 자리잡아, 성적이 나쁜 학생 때문에 성적이 좋은 학생까지 피해를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사회는 부와 학력 대물림 고착화가 상당히 우려된다 = 학력간 소득격차는 사교육비 격차 확대로 이어져 부의 대물림 현상을 초래할 것으로 내다 보인다.
전문가들은 학력에 따른 소득격차, 이른바 ‘학위효과’가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저소득 계층에 대한 교육지원 확대 등 임금 격차에 따른 양극화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는 사이 어쩌면 한국의 교육 방식이 개인에게 맞지 않았을 뿐인, 특기와 적성이 맞는 분야를 접해보지 못했을 뿐인 학생들이 재능을 펴지 못하고 도태되고 있는 사실은 무시한다.
어느 쪽이 더 불합리한가? 이 사이에서 경중을 따질 수는 없겠지만, 가장 불합리한 것은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 제도와 사교육의 심화, 끝을 모르고 벌어지는 교육 격차라고 확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