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두고 호랑이 담배 먹던 이야기라고 전한다. 그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성정이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하던 한반도인 들에 부지기수로 남쪽에서는 일본인들이 정규군과 왜구(倭寇)들이 밤새워 화살과 일본도를 휘두르며 기습해왔고, 북쪽에서는 중국 정규군과 화적(火賊) 떼들이 기습하여 무고한 한반도인 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학살하고, 남녀들을 납치해간 불행한 역사는 통한의 눈물로 강하를 이루다시피 하였다.
중국 창기사(娼妓史)를 보면, 중국인 도적들이 한반도를 기습하여 끌고 간 대상 가운데 다수는 10세 때부터의 어린 소녀에서 20∼30의 젊은 여인들이었다. 당시 백성을 지켜주는 왕의 무력이 없다시피 한 한반도의 변경에는 중국과 일본의 도적 떼들이 경쟁해가면서 단골로 기습해온 통한의 역사가 있다.
중국 도적들이 남치해간 처녀들과 젊은 여인들은 대부분 노예시장에서 노비로 팔려나갔다. 주로 많이 팔려간 장소로 유명한 곳은 북경에 유명한 창가(娼街)였다. 일본에 끌려간 여성들도 대부분 일본의 창가(娼街)였다.
끌려간 소녀들과 처녀들은 밤새워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르면서 구원해주기를 바라면서 울고 또 울었다. 소녀들과 처녀들은 모진 매를 맞고 배를 굶기고 창기로 살도록 강요받으면서도 오직 어머니 아버지가 돈을 들고 구원해주기를 기도하면서 살았지만 구원은 없었다. 백성을 구원하는 왕은 없었고, 딸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돈을 들고 찾아오는 부모는 더더욱 없었다. 따라서 정부나 개인이 무력으로 남과 북의 도적들을 사전에 방비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는 같은 비극은 끝이 없어 보였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기간에 일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일본 천황의 황은(皇恩)을 입혀주었다지만, 일본군이 중국 등에 끝없는 전쟁을 일으켰을 때, 조선의 청년들은 일본군에 학도병으로 또는 동네 개잡듯 청년들을 붙잡아 전선으로 끌고 가 일본군의 전선에서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다.
또 나이 어린 소녀, 처녀들은 호구지책(糊口之策)의 일거리를 준다며 속여 일본군 위안부로 끌고 갔다. 그 위안부에는 조선여자, 일본여자, 중국 여자 등 가리지 않고 전투를 하는 일본군에 위안부가 되었다. 매일매일 화대조의 돈이 아니지만 돈으로 환전되는 군표(軍票)를 받고 몸을 팔아야 했다. 위안부의 다른 이름은 정신대(挺身隊)였다.
매일매일 군표로 몸을 팔면서 일본군 위안부는 어쨌던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형제를 만나는 것이 유일한 꿈이요, 기도였다. 부지기수의 위안부들이 자나 깨나 꿈을 꾸면서 병들어 죽어갔다.
나라를 빼앗기고 점령군이 전쟁을 할 때면 죽어나는 대상은 청년과 처녀들이었다. 작금에도 언제던 동맹인 미국이 대중국 전쟁을 하게 되는 날이 되면, 한국의 청년들과 처녀들은 강제 동원되는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한국의 부모들은 통찰하고,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북한의 청년들과 처녀들도 역부여시(亦復如是)이다.
일제가 항복하자, 위안부들은 약간의 군표를 돈으로 바꾸어 들고 위안부 신세를 끝내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덮고 인연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본군 위안부 노릇을 한 경력이 분명하면, 일본국가에 사죄를 받고 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어느 변호사들의 부추김으로 숨어살던 위안부들은 얼굴을 내놓고 일본과 싸우게 되었다. 진짜 가짜의 위안부들로 논란이 있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 한-일 협정에서 한국정부는 일본 측에서 토탈 많은 돈을 받았다. 당시 정부에서는 일본에서 받은 돈에서 반드시 위안부에 대한 배상금을 주어야 마땅했다. 그 때나 작금이나 일본에서 돈을 받으면 위안부에게는 납득할 만한 배상금을 주지 않고, 국고금으로 또는 사기꾼 같은 자들이 고통 받은 위안부를 속여 사복(私腹)만을 채워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가꾼들이 독차지했듯이 말이다.
작금에는 일부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고승과 일부 승려들까지 위안부들을 위하는 척 핑계하고 선동하여 일본에 또 일확천금(一攫千金)의 배상을 요구하고 그 배상금에 빨대를 꼽는 추악한 짓을 해보였다. 마치 일부 승려들도 창녀촌의 포주 같은 짓을 해보인 것이다. 부처는 왕위까지 버리는 수행자의 본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돈에 탐욕하여 포주 노릇이 웬 말인가.
일본군에게 위안부 생황을 해온 한국 여성의 통한을 어떻게 필설(筆舌)로 위로가 되겠는가.
그런데 한-일 관계가 불행한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가야 할 시점에, 文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중국이 한국에 끼친 통한의 과거사는 입을 닫고, 오직 일본에만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선동 같은 것을 해보이고 있다.
역대 일본 수상이 일제시대에 대한 사죄를 해오고, 배상금을 지불하고 일본 천황이 사죄를 해도 소용없다. 한국 대통령이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위안부 등을 또 문제제기하여 일본에 사죄를 요구하고 결론은 끝이 보이지 않게 배상금을 요구하자는 것이다. 일본에 끝이 보이지 않게 사죄와 돈을 요구하는 한국 위안부 문제이다.
文정부 때에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듯 한국 재판소에서 일제시대에 일본의 불행한 일에 대한 고소, 고발에 대한 사건을 접수하여 만약 일본측이 배상하지 않으면 오늘의 일본재산을 경매물건으로 가압류하는 판결을 해대고 있다. 국제사회가 포복절도(抱腹絶倒)로 대소할 일이다. 일본 열도가 마르고 닳도록 배상금을 받아 사복을 채우자는 목적인 것이다. 한국도 3만불 시대를 넘은지 오래인데 일부 한국인들 왜 그런가.
한국정부는 중국에는 과거 끌어간 공녀(貢女)와 납치하여 창가(娼街)애 팔아먹은 사실에는 10원 한 장 배상을 바라는 요구도 하지 못하면서 오직 일본만 국제사회에 개망신을 일삼고 배상을 요구한다. 이러한 한국인들이 사복을 채우려는 일본에 대한 끝없는 시비의 종착역은 누군가는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요, 일본측이 “제발 더 이상 인내하지 말고 도발을 해달라”는 전쟁 요청이라 논평하고 있다.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노골적으로 한-일간에 전쟁이 나면 100%한국 국군이 승산이 있다고 부추기고 있다. 일본이 국방군이 아닌 자위대 수준이라 일본군을 깔보면서 한-일간에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일은 불행한 과거사를 잊고 젊은 사람들이 좋은 친구가 되어 상호 무역하여 경제번영을 바라는 뜻에서 이 글을 적는 것이다.
文대통령 통치하에 한국사회는 대통령의 특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북-중-러에는 비루할 정도로 아부해 보인다. 일제에서 전쟁애서 피흘려 해방시켜주고, 대한민국을 건국해주고, 6,25 북-중-러의 남침전쟁에서 미군 54246명이 죽고 미군 10만여 명이 상이용사로 고통받으면서 한국을 수호해주었고, 경제번영을 시켜준 공덕이 미국에 있는데, 이제 와서 文정부는 “한국은 주권국가”라고 주장하며 유엔사 폐지, 종전선언, 전작권 환수, 나아가 주한미군철수 운동을 보이고 있다. 일제 때 독립군이 전투를 해서 해방을 맞이하고 독립군이 대한민국을 건국해주었는가.
또 일본에는 일전불사(一戰不辭)의 선전포고를 보내듯 해 보인다. 북한군도 이기지 못하는 과거 6,25 전쟁 때 보여준 국군 전력인데, 제2 한국전을 초래하는 반미(反美), 반일(反日)에 호전적인 文정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한국인들이 반미, 반일을 하기 전에 미국과 일본에 열심히 마음 붙이고 살아가는 한국인 교포들의 안위를 살피고 주적시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나는 강력히 주장한다.
끝으로, 文정부가 벌이는 북-중-러를 위한 보비위로 반미, 반일의 정치는 美-日이 한없이 인내할 수는 없게 되었다. 만약 한국 정치인들이 일본이 인내하는 것을 이용하여 더더욱 일본에 계속하여 사죄타령, 배상타령을 하고, 일부 한국 언론은 일본을 개무시하고 전쟁이라도 하자는 듯한 언론작태를 계속 보인다면, 일본은 인내의 한계에 폭발할 수 있다. 제발, 일본은 군사적으로 폭발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나는 주장한다.
나는 한국정치가 잘못되고 있는 것은, 진짜 일제와 맞서 싸운 한국 여성의 대표적인 유관순 등 여성 애국자들은 애써 숨기고, 전직 위안부 출신을 한국을 대표하여 국제사회에 일본과 씨우도록 부추기며 찬사를 보내는 일부 언론과, 文정부가 전체 국민들에 중국은 빼고, 일본을 주적같이 선동하는 대일(對日) 정치라고 생각한다.
李法徹(이법철의 논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