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봉사는 나눌수록 자라나는 것이 사랑의 기쁨입니다
나눔의 봉사 조금은 “힘들지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봉사란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가진 것을 조금씩 떼어서 나누고 사는 거지. 세상은 큰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작고 사소한 것이 모여서 전체를 지탱한다.
또 우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부끄러워하는 소박한 마음이 모여서 세상의 전체를 이룬다고 필자는 감히 생각하며 오늘 칼럼 주제를 코로나19 속에서도 소외되는 이웃의 서민과 장애인들을 배려하자를 선택했습니다.,
사랑의 나눔 봉사는 모래밭 땅콩줄기 같아서 땅 속에 얼마나 많은 열매를 갖고 있는지 뿌리를 뽑아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모든 일은 시작이 중요하고 봉사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과감하게 시작하면 또 다른 이들이 도움을 주기 마련이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어서 이인삼각 경기처럼 서로 발을 맞춰 걸을 때에 게임이 원만해 지는 것과 같아진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1년여 지속된 장기화로 경제적으로 어럽고 힘든 장애인들은 감염병의 위협 외에 일상에서의 차별로 인해 소외감, 사회 단절을 겪고 있다.
일상에 마스크는 보급되었지만 투명 마스크는 찾기 어렵다. 청각 장애인의 경우 마스크 착용으로 입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소통의 창구를 막는 것이자 또 사회의 단절을 의미한다.
일부 민간에서 투명 마스크를 제작하고는 있지만, 바이러스 침투를 막기 위한 완전한 밀폐는 어렵기에 국가가 앞장서서 투명 마스크 생산 지원을 뒷받침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또한 언론에서 ‘깜깜이 감염’이란 말을 자주 사용해 왔지만 이는 ‘신체적으로 앞을 보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을 비하하는 차별적 표현’인 점을 지나쳤다.
이말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로 ‘감염경로 불명’이나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환자’로 언어를 바꾸어 사용해야 할 것이다.
특정 주제나 사안에 대해 알기 쉬운 말로 전달하는 중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용하는 표현이나 단어가 차별적 시선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두루 살펴야 한다.
요즘 누구나 할 것 없이 각박한 현대사회는 신종코로나의 확산 여파로 크고 작은 모든 행사들이 취소나 연기 등에 따른 시민사회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자원봉사 기부를 필요로 하는 인식이 점차 우리 사회에서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들은 급격하게 변화해 가는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대전환의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화, 정보화가 급속하게 가속화 되면서 물질주의의 팽배, 사회의 양극화현상, 고령화 및 저출산, 청년들의 취업난 등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급속히 대두되고 있다.
국가보조금 없이 대구천사후원회 회원들은 십시일반 1만원의 동참 후원으로 보람있고 감사한 후원의 케치프레이져로 나눔 봉사는 일중, 주중, 월중, 1년 365일 지속적으로 이웃에 사랑을 전달하는 대구천사후원회 같은 봉사단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작금 전염병 확산으로 어수선한 우리 현대사회는 복지 수요와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 반면 사회적인 불안정으로 인한 가치관의 혼돈, 핵가족화에 따른 가정교육의 기능 등은 급속하게 무너지고 국가의 복지제도나 사회의 안전망에 대한 인프라는 취약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들은 5000년이라는 문화융성의 찬란한 역사를 배우면서 성장해 왔다. 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촌락(마을)의 형태를 형성하여 인간생활의 기본 단위인 가족을 중심으로 한 구성원들이 모여 촌락을 기본 사회단위로 하는 공동체적 삶의 관계가 형성돼 왔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조상들이 이어온 공동체적 사명의식인 협력정신을 이어 받아 개개인을 사회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한 조상들의 지혜를 계승할 필요가 있다.
자원봉사 활동은 정보화, 문화화에 따른 각종 사회의 병리적 문제와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야기된 부패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강조되면서 사회, 경제, 사회복지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 국가의 중요한 정책의 영역으로 등장하게 됐다.
자원봉사 활동은 나로부터 출발된 친족이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도와주거나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지만 아무런 보수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하고 자발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원봉사 활동은 타인을 위한 헌신에서 비롯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희생이 따를 때 가능한 활동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우방 미국에서의 자원봉사 활동의 경우를 살펴보면 보수 없이 자발적으로 자원해서 복지시설, 농어촌, 탁아소 등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가 전 인구의 약 30% 나 돼 재정적인 부분에서 20%의 절약 효과를 얻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원봉사 활동은 단지 타인을 위하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원봉사 활동으로 인해 나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다함께 행복해 진다는 사고로 선진복지 사회를 건설하는 바탕이 된다는데 있어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가까운 친척과 가족 그리고 친구에겐 지나칠 정도로 내일처럼 도우면서 타인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은 지극히 형식적이고 소홀하다. 보편적으로 “한국 국민은 인정에 강하고 미국 국민은 봉사에 강하다”는 말이 이를 잘 반증해 주고 있다 할 수 있다.
영국의 사회 비평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인간에게 힘이 주어져 있는 것은 약한 자를 돕고 떠받들기 위함”이라 했다. 러스킨은 사람들이 하는 일 중 가장 소중하고 가치로운 일이 많은 사람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눔의 자원봉사 활동이 아무리 헌신적이고 희생이 따르는 가치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진심된 마음에서 우러나 스스로 즐겁게 참여할 때 그에 대한 진가가 나타난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