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정각)을 얻기 위해 왕자의 지위를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떠나 고행자가 된 가비라국 싯다르타 왕자는 신분제 없는 인간의 평등한 구원의 말씀을 하시고, 자비를 실천하는 일생을 살았다. 따라서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속가제자(俗家弟子)나 출가제자(出家弟子)는 시공을 초월하여 부처님이 걸어 보인 마음공부로 수행하고, 신분제 없이 평등한 민주세상으로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 헌신 봉사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는 첫째, 부처님의 법에 의해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 수행 즉 마음공부를 해야 하고, 둘째, 부처님의 깨달음을 평등한 마음과, 자비를 실천하는 마음으로 중생에 보시하는 대자대비심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광대무변한 우주의 유일한 법신불이 고해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인간의 의 육신으로 오신 천백억불화신(千百億化身) 화산중의 하나이고, 인도에서 주장하는 과거칠불(過去七佛)중에 마지막 순서의 부처님으로 전한다.
부처님은 모후(母后)인 마야왕비의 태몽에 인도에서 성물의 상징인 백상(白象)이 찾아와 공손히 엎드려 절하는 꿈을 꾸고 나서 임신하였다 전한다. 근거는 부처님의 전기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인도의 풍습대로 임신하여 출산때가 되면 친정집에 가서 해산을 하는 풍습에 따라 마야왕비는 찬정나라로 길을 걷던 중 녹야원(鹿野園)이라는 곳에서 해산기를 느끼고 부처님을 탄생하시었다. 바꿔 말해 부처님은 모후의 친정가는 길에서 태어난 것이다.
마야부인은 싯다르타 왕자를 낳으면서 극심한 난산(難産) 끝에 일주일 만에 왕자와, 세상을 떠나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따라서 이모의 손에서 양육된 어린 왕자는 7∼8세때부터 생모가 왕자를 낳으면서 난산 끝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운 마음속에 “나의 어머니는 어디에 계씰까? 인간은 왜 생노병사를 피할 수 없는가?” 의 생각으로 늘상 슬픈 마음이었다 전한다. 마침내 왕자는 인간의 생보병사의 진실을 스스로 깨닫기 위ㅙ 왕위를 헌신짝 버리듯 하고 야밤에 도망치듯 왕궁을 떠나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
부처님은 6년의 고행 끝에 우주는 광대무변하고 항하사(恒河沙) 모래수과 같은 별의 국토가 존재한다는 것을 때달았다. 지구는 모랫수와 같은 별들의 국토중의 하나였고, 지구에 태어난 자는 생노병사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구는 음양계이고 하나의 동물농장과 같은 생사의 고통에서 윤회하는 고해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처님은 인간을 위시한 모든 생명은 지구에 육신으로 태어나면 선인선과(善因善果)를 얻는 수행을 해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서방정토(西方淨土)인 극락세게에 왕생하여 무량수(無量壽) 부처님의 국투에 태어나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무량수불(無量壽佛)은 아미타불이라고도 호칭된다.
부처님은 인도에서 미얀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마얀마까지 70대 후반에 두 번이나 걸어서 찾아갔고, 미안마왕을 두 번 만나 인간은 태양아래 평등하다는 것과 누구던 나와같이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거듭 거듭 설법하시었다.
부처님은 지구의 모든 생명은 인연따라 태어나고,(諸法從緣生), 인연 따라 죽는다(諸法從緣滅)고 가르치었다. 새상의 인간사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일어나고 인연이 다하면 종말이 온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인간들은 평소 선인(善因), 선과(善果)를 얻는다는 것을 굳게 믿고 수행과 마음공부를 잘해서 좋은 인연을 만나기를 원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 신앙인들은 모든 인간의 행(幸)과 불행(不幸)과 인간 수명의 요수장단(夭壽長短)과 빈부귀천(貧富貴賤)이 모두 진지전능한 유일신이 주재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불교는 다르다. 인간 개개인이 얼마나 선인(善因)을 심었느냐에 선과(善果)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지, 평소 악인(惡因)을 태산같이 쌓으면서 전지전능한 신에게 행복을 간구하는 기도는 기도성취는 난망한다고 불교는 가르치는 것이다.
또 부처님은 진리를 정각한 여래(如來)는 중생이 창과 칼로 죽일 수 없다고 강조하시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났고, 길을 걸으며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수행을 하면 누구던 부처기 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신분제를 타파하는 설법을 하오시다가 열반의 때가 다가오자 갈 가에 있는 사라쌍수(沙羅雙樹) 나무아래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자귀의 (自歸依) 법귀의(法歸依)에 대한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은 몸소 불교수행자는 철저한 무소유사상속에 중생들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귀감(龜鑑)을 보여주었으니 부처님의 출가제자는 반드시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마음공부로 수행하지 않는 남녀중생은 지구신(地球神)의 뜻대로 섹스의 쾌락 속에 자녀를 번식하고, 부귀영화에 탐착하여 살다가 인연이 다하면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죽고 마는 것이다. 중생들은 마음공부와 수행은 하지 않고 "인생은 돈 잘 벌고 잘 먹고, 섹스 하는 것이다”는 생각으로 사는 남녀는 부지기수이다. 이는 개, 돼지도 잘하고 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지만, 마음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지 않는 인생을 산다면 개, 돼지와 무엇이 다를까?
수많은 간판의 한국불교 가운데 대한불교 조계종은 이승만 전 대통령 은덕에 전국 국립공원 등 명산명찰을 공짜로 소유하게 되었다. 관광지 사찰은 매표로 돈을 벌고 불전에 쏟아지는 헌금과 각종 불사를 빙자한 돈과 기도금으로 졸부(猝富)가 되고 해마다 국고지원금을 받아 수입 잡는 혈안이 되어 있다.
따라서 일부 승려는 위대한 성인인 부처님을 매불하듯 하여 은처자를 부양하기 위해 공금을 처자에게 빼돌리고 있다. 매불하여 돈을 벌겠다는 자는 부처가 되는 마음공부의 수행도, 조국 대한민국의 호국도 관심이 없는 자들이다. 사회주의로 불교가 망하는 그 때까지 오직 모리배로서 사자신충(獅子身蟲)하듯 하면서 하는 자들일 뿐이다.
따라서 이대통령 은덕에 막대한 불교대산을 관리하는 데, 일부 승려들은 부처님의 제자 복색은 하고서는 속내는 속인 빰치게 은처자(隱妻子)를 먹여 살리기 위해 불교중흥에 쓰고, 민중 구제에 써야 할 부처님의 정재(淨財)를 사사로이 가로채는 마치 탐귀(貪鬼), 간탐귀(慳貪鬼) 노릇을 하고 있다.
처자를 부양하기 위해 혈안인 자들이 중생에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권부에 돈을 상납하고 아부하는 권력의 시녀노릇을 해오는 일부 승려들에 부처님이 아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너희는 불교를 망치는 마군이다!“ 대노하시지는 않을까?
진짜 부처님의 제자는 부처님같이 무소유사상속에 인생을 살아야 하고, 청정한 마음공부와 수행속에 중생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자비실천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수행자가 된 후 처자를 숨겨놓고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중생에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부처님의 제자는 부처님이 일생을 통해 중생의 이익을 위해 헌신 봉사하듯이, 이 시대릐 중생들에 헌신봉사하는 각오를 다지고 고민해야 하고, 독재자의 전횡이 없는 “법은 만인에 평등한 민주국가를 위해” 독재자에 저항해야 한다고 니는 주장한다.
끝으로, 불교의 면벽참선으로 개인의 성불도 좋지만, 한국의 비구, 비구니들은 원(元)나라의 학정, 폭정에 맞서 민중을 위해 투쟁한 명태조 주원장(법해스님)처럼 투쟁해야 하고, 마곡사 승려 원종(圓宗)이었던 김구(金九)처럼 일제에 독립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고, 독립군 대장 홍범도도 승려였지만 한반도의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군으로 헌신하였다.
일제 때에는 수많은 승려들이 니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목숨을 바친 역사가 있다. 따라서 전국의 비구, 비구니들은 개인의 성불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에 자유민주로 조국통일하는 전체 국민의 염원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고, 작금에는 전직 대통령 두 명을 적폐로 몰아 감옥에서 무기한 고통을 주는 독재정치,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을 고의적으로 방치하고 있다가 코로나의 번성이 특정교회 허물 탓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선동하는 독재권력에 맞서 요원의 들불처럼 일어나 저항하여 세상을 변혁시켜야 하다고 나는 강력히 주장한다.
李法徹(이법철의 논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