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후진국형 대형참사 막을수 없는가?

2017-12-26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25일 제천 화재 참사와 세월호 참사 등의 대형 인재 사고와 관련하여 [후진국형 대형참사 막을수 없는가?] 라는 김 청장의 생각을 담은 기고문을 본 양파방송, 양파뉴스에 상세한 입장을 밝혀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문 그대로 게제한다.

제천 화재 참사,세월호 참사 등의 대형 인재는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까?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는 승객 304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였다. 또 2017년 12월 21일 발생한 제천 화재사고는 사우나에 있던  손님 29명이 사망한 청천병력 같은 참사이다.

세월호 참사는 줄곧 정쟁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던 2017년 3월 10일 당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팽목항을 방문하여 아래와 같은 방명록을 남겼다.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고맙다'는 의미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듯이 이 방명록 내용에서 세월호 참사의 정치적 의미를 엿볼 수 있다.

2017년 12월 25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제천 화재현장을 찾아 ''사전에 소방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현장 지휘책임자의 안일한 대응이 참사를 키운점에서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월호처럼 정쟁에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언론 등에서는 불법주차 단속을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소방차의 진입이 막힌 것도 피해를 키운 이유 중의 하나로 지적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선박안전법안 통과를 지연시켜 참사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정치인을 비난한 것과 똑 같은 맥락이다.

작은 사고는 말단 공무원 책임이고 큰 사고는 나랏님 책임인가? 
물론 맞는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누구나  크든 작든 사고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했느냐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나는 이러한 사고 특히 인재라 불리는 대형참사는 전적으로 두가지 화두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 두가지 화두가 진지하게 검토되고 실행되어 자연스런 문화로 정착될 때  그런 참사는 경험척상 방지되리라 확신한다.

먼저 두가지 화두를 말하기 전에 2년전인 2015년에 발생하여 전국민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 질환)에 대해 완벽하게 대처해 '메르스 명지대첩'이라는 신화를 탄생시킨 고양 명지병원의 예를 소개하고 싶다.

이 병원에서는 ''메르스가 언젠가는 한국에 온다''는 믿음하에 '메르스 신종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을 위한 전담팀'을 구축하고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이다. 메르스가 상륙하기 1년 전 이었고 정부의 지시로 한 것도 아니었다.

환자 전원 완치에 의료진 감염자 또한 1명도 없었다는 신화는 그렇게 창조된 것이었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두가지 화두는 이 명지병원 사례에 다 포함되어 있다.

첫째는 어떤 조직이든 자기주도형 근무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일선에서 일하는 접점추진체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일은 누가 하는가? 세월호 사태시 대통령이 나서서 현장지휘를 하고 빨리 구조하라고 각 부처 장관들에게 호통쳤다고 해서 과연 구조가 제대로 되었을까?

불이타고 있는 현장에서 빨리 불을 끄고 사람을 얼른 구출하라고 소방청장이 현장에 와 고함친다고 해서 과연 불속의 사람이 구해지는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에게 모욕을 주고 온갖 폭행 폭언을 일삼는 주폭을 그냥 두다니, 무관용원칙으로 엄벌하라고 해서 주폭이 척결되었던가?

아니다. 일할 수 있는 여건과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나랏님이 아니라 옥황상제가 지시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세월호 사태나 제천참사 사고가 나기전에 안전 점검을 책임진 자가 제대로 점검했고 사태발생시에 최접점에 있었던 선장이나 현장 화재진압 및 구조책임자가 제대로 대응했다면 어땠을까?

어떠한 문제점을 사전에 인지한 상위의 책임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면 또 어땠을까?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공직문화는 자기주도형 근무문화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지시에 익숙한 타인주도 근무 문화가 대세임이 분명하다.

자기주도 근무는 자기의 책임하에 자율적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동료들의 지혜와 경험을 모아 업무를 재창조하는 근무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조직의 관리자는 비전과 롤모델을 제시하고 인적 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지원해야 함은 물론이다.

고양 명지병원의 메르스 대첩은 자기주도형 근무문화와 접점추진체의 정비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발로 뛰고 몸으로 씨름하면서 체계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접점추진체라 부를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적폐척결을 위한 위원회'같은 것도 접점추진체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접점추진체는 다양한 모습으로 구성될 수 있지만 정말 그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해야할 일은 이러한 자기주도형 근무문화가 중요하다는 철학을 평소에 피력하고 ,그런 문화가 형성되도록 평소에 역할하는 것이지 상황발생시에 이것저것 지시를 잘하는 데 있지 않다. 전문성없는 지시는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 수도 있다.

나는 충북지방경찰청장을 할 때인 2010년에 최초로 주폭개념을 창안하였고, 술의 힘을 빌어 총을 차고 있는 경찰에게까지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폭력을 일삼는 성향이라면 힘없는 사람에게는 '오죽했을까' 라는 관점에서 그 피해 사례를 적극  찾으라 말했던 것이다. 물론 '주폭 수사전담반'을 펀성했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자기주도형 근무문화를 주창했던 것도 사실이다. 직원들이 '주폭대첩'이라 불렀던 주폭척결의 성공은 윗사람의 지시로 이루어진게 아니다. 나의 오랫동안의 고뇌에 의해 태동되었고 직원들의 창의로  꽃을 피웠던 것이다.

2012년 10 월 11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가 있었다. 그 때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여야의원 모두 서울청의 자기주도형 근무문화와 주폭 척결시책에 대해 극찬에 가까운 칭찬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기주도에서의 자기는 그 직위에 따라 다르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장관은 장관으로서, 순경은 순경으로서, 소방서장은 서장으로서 ,9급 공무원은 9급 공무원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적극적 임무에 충실해야할 일이 있다.

자기주도형 근무문화의 제일 적은 상위 책임자의 만기친람의식이고, 무사안일 복지부동하는 조직문화다.

'에너지는 책무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기주도형 근무 문화와 잘 정비된 접점추진체가 우리 일상에서 살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세월호나 제천 화재 참사같은 대형 인재는 사라지고 국민의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천 화재 참사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그 유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 올립니다.

2017년 12월 25일.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용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