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문칼럼] 60주년 맞았는데도 아직도 평가 미흡한 4·19혁명

잊히지 않을 권리, 잊지 않을 의무 4.19혁명 60주년.

2020-04-18     이강문 주필
▲ 양파TV방송.양파뉴스 이강문 총괄사장.

내일은 1960년 4월 19일 집권당인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부정선거에 분노해 온 몸으로 저항했던 4·19의거 60주년을 맞은 뜻 깊은 날이다. 

국가보훈처는 '제60주년 4ㆍ19혁명 기념식'이 오는 19일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국립4·19민주묘지에서 거행된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원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기념식을 대신해 추모제로 약소하게 치러져 아쉬움을 남을 것 같다.

"1960년 독재정권의 억압과 불의에 항거하여 자발적으로 일어난 시민혁명인 4ㆍ19혁명의 의미와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이날 기념식은 '아!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정부 주요인사, 4·19혁명 유공자 및 유족 등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고 밝혔다.

60주년 맞았는데도 평가 미흡한 4·19혁명 어지러운 시국 속에서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뜻깊은 날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세대는 역사의 그날을 직접 경험하진 않았지만 역사책과 각종 매체를 통해 보고 들어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4.19혁명의 본질을 더 들여다보자면 그 속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법적인 개헌, 부정선거,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한 독재적 장기 집권 등 암울했던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저지하고 규탄하기 위해 시민과 학생들은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폭력과 강제 진압으로 대응했다. 이로 인해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아픈 현대사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승리했고, 독재에 대항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날의 4월 19일이 지나간 역사의 하루 일뿐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를 뒷받침하듯 4.19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탄압과 보수 정권의 소용돌이 속에서 혁명이 아닌 의거로 일반화되기도 했다.

4·19혁명의 도화선은 3·15일 1차 의거를 일으킨 후 27일이 지난 4월 11일,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 중앙부두에서 발견되면서 전 국민의 분노가 폭발해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됐다.

한국 현대사 최초의 민중운동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의 효시인 3·15의거이지만 지금까지도 독립적,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하고 있다. 학생과 시민들이 목숨을 마다않고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3·15특별법’ 제정이 절실하다.

현재 3·15의거와 관련된 각종 기념사업들을 재단이 아닌 ‘사단법인 3·15기념사업회’가 자치단체 등의 예산에 의존해 치른다. 이대로 놔둔다면 역사적 가치는 퇴색해버린다. 하지만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그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3·15의거의 그 뜻을 기리는 마음으로 4.19혁명이라는 단어로 다시 명명될 수 있었다. 올해가 4.19혁명 60주년이라는 것과 더불어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4.19혁명 기념일에 앞서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60년 전 그날엔 3.15부정선거가 혁명의 불씨가 되어 진정한 민주주의로 한발 다가섰다면 올해는 정당한 투표를 통해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로, 같지만 다른 의미의 민주주의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60년이라는 시간은 인생으로 본다면 한 사람이 태어나 중년이라는 세대로 일컬어질 짧지 않은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쌓여온 세월동안 4.19혁명이 역사 속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인 아닌지 한번쯤은 되돌아보며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2020년의 4월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 그날처럼 많이 아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단한 권력층도 집권층도 아닌 60년 전 일반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 국민이 하나 되어 이겨내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그날의 숭고한 희생과 큰 용기를 직접적으로 내뱉지는 않아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날의 정신을 잊지 않으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고, 그날의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후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민주주의 정신이 아닐까싶다. 여기서 3·15특별법은 국회에 계류 중에 있으나 20대 국회에서는 처리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3·15의거 주역들이 80대 이상의 노령이라는 데 있다.

특별법이 제정돼야 이들의 명예회복과 보상, 재단 설립근거 등을 마련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3·15의거를 4·19혁명과 분리된 독자적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특별법 제정에 따른 재단 설립이 역사적 가치를 후손들에게 제대로, 영원히 물려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승만 정권을 무릎 꿇게 만든 것은 4·19혁명 이전에 3·15의거를 일으킨 마산 사람들로 마산은 진정한 민주화의 성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