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문칼럼] 튼튼한 가정의 뿌리교육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송인지묘(宋人之苗)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2019-02-03     이강문 주필
▲양파방송.양파뉴스 이강문 총괄사장.

전통주(술)는 즉 ‘살아있는 술은 족보가 있어야 한다 ’라는 어느 고급 양조회사의 표어 카피 선전문구를 본 적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뿌리라는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연한 기회 중학생 퀴즈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사회자는 중학생 대표 학생들에게 자기 아버지의 성함을 한자(漢字)로 쓰라는 문제를 내어 주었다.

모두들 자신만만하게 써서 텔레비전 화면에 비춰졌다. 재미있게 지켜보던 필자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제 학교에서 꽤나 우수한 학생들이 뽑혀 나왔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니 씁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또 자랑스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텔레비전 화면 앞에 모여 앉았던 부모님들은 학생들에 대한 기대가 삽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려 허탈감마저 들게 하였다.

정확하게 아버지의 이름을 한자로 쓴 학생은 단 한 명 뿐, 나머지는 모두 틀리게 썼다.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던 많은 방청객들의 얼굴은 달아오른 텔레비전 만큼이나 화끈거렸을 것이다.

모든 식물은 뿌리가 있어야 자랄 수 있듯이 우리 인간에게도 기본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형식적인 것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송인지묘(宋人之苗)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어느 날 맹자가 임금님을 찾아가서 송인지묘라는 비유를 들어 말한 일이 있다. 이 이야기는 어느 시골에 살고 있는 어리석은 농부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리석은 농부는 밭에 씨앗을 뿌려놓고 가꿀 생각은 않고 매일 같이 빈둥빈둥 놀고만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잡초도 뽑고 거름도 주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곡식을 가꾸었다.

보다 못한 농부의 아내가 “여보, 매일 빈둥빈둥 놀지만 말고 논밭에 나가 잡초도 뽑고 곡식을 좀 보살펴 주어요. ”아내의 성화에 못이긴 어리석은 농부는 들에 나가보니 자기 밭에 곡식들은 모두 키가 작고 잘 자라지 못한데 이웃집의 곡식들은 모두 키가 크고 잘 자라 탐스러웠다.

화가 난 농부는 온 종일 자기 밭의 곡식들의 순을 쑥쑥 뽑아 올려서 곡식들이 단 하루만에 이웃집 곡식보다 더 잘 자랐다고 으스대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말을 들은 동네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곡식들이 모두 시들어 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이 어리석은 농부의 행동에서 깨달을 수 있는 점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을 한번 해보자.

뿌리를 가꿀 생각은 하지 않고 곡식들의 순을 뽑아 올리는 것처럼 우리의 교육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실제적인 지식은 잘 익은 과일과 같이 즉시 먹을 수 있지만 미래의 뿌리가 될 수 있는 지혜는 씨앗과 같이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우리가 학교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추구보다는 외형적인 입시위주의 지식암기 교육에 치중된 감이 적지 않다.

우리는 지금 지식의 양적인 축적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응용력, 추리력, 창의력 교육을 통하여 지혜의 질적인 확산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 뿌리교육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한국교총에서 ‘교사 자존심 회복의 해’로 정한 적이 있었다. 교사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이 곧 교사의 사기를 높이는 길이요, 나아가 교육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

교사가 잃어버린 자존심은 누가 회복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교사 자신들이 어떤 외세의 압력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긍지를 지니고 자존심 회복에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을 뿌리째 흔드는 교실붕괴, 교권추락, 공교육불신, 사교육 증대 등은 우리가 풀어야 할 중요 과제임이 틀림없다.

사랑의 손길로써 자라는 세대들을 가꾸고 보살피는 것이 뿌리를 튼튼히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흔히 우리는 뿌리는 생각하지 않고 달콤한 열매만 기대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할 따름이다.

양파방송, 양파뉴스의 애청 애독자 여러분들의 가정의 뿌리가 단단한 가정교육의 본보기로 여느 회원들에 비해 사회의 모범과 귀감이 되는 회원들로 구성되었다 확신합니다. 2019년 돼지해 무궁한 발전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