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 한글 훼손 파괴에 앞장 국적 불명 언어 난무.
내일 9일은 571돌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이 나랏사람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것을 기념하고 우수한 한글을 잘 보존해나갈 것을 다짐하는 날이다.
한글은 남북한, 해외 동포 등 7000만명이 사용하는 세계 13위권의 대국어이다. 국제무대에서 10대 실용언어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지구상에 자기 문자를 갖고 있는 민족은 20개국에 불과할 만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1991년 이후 23년 만인 2014년에 한글날이 법정공휴일로 재지정된 것은 그만큼 한글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우리말과 글을 정확히 쓰는 데 가장 노력해야 할 행정기관이 오히려 스스럼없이 한글을 훼손한 것으로 나타나 무척 안타깝다. 국립국어원이 최근 3년간 중앙부처의 보도자료 1만1790건을 분석한 결과 평균 55.3%가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기관별로는 공정거래위원회, 기상청, 관세청 등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미흡한 곳은 금융위원회, 국가보훈처, 새만금개발청 등이 꼽혔다. 인터넷, 모바일 SNS 등 디지털문화와 국제화가 확산되면서 다양한 언어의 쓰임은 불가피하다. 한글만 고집할 수는 없다.
정부 공식 문서에서조차 어문규정에 어긋난 한글 어휘나 어법이 자주 목격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한글 사랑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오히려 파괴하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돼야겠다. 한글은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위대한 문화 자산이다.
한글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아름답게 다듬어 널리 알리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정부는 가장 모범적인 국어선생님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대표 유산인 한글의 가치에 국민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우리만의 문자가 있다는 사실은 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오늘날 우리말의 힘을 말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최근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나라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한류 케이팝 등 한국 대중문화의 위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과학적 음운체계를 갖춘 한글 본연의 우수성이 인정받은 결과다. 해외의 한국어 인구가 꾸준히 늘어 국제회의에서도 당당히 10대 실용 언어 반열에 들었다.
이런 우리말이 정작 우리 안에서는 어떤 대접을 받는지 돌아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방송 매체와 인터넷 등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해괴한 신조어들이 시시각각 쏟아지고 있다. 연예 스타들이 출연하는 토크쇼나 인기 대중가요의 우리말 파괴는 한숨이 터질 지경이다.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가 소통의 주요 창구인 청소년들에게 대중문화 현장의 우리말 왜곡은 그 파급력이 상상 이상이다. 청소년들은 영어와 우리말을 제멋대로 섞은 아이돌 스타들의 노랫말을 비판 없이 따라 부른다.
사이버 공간과 대중문화에서 일그러진 우리말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에게서 올바른 우리말 사용법을 기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국적 불명의 신조어, 원칙 없는 마구잡이 줄임말은 언어 파괴에만 그치지 않는다.
집단 은어가 워낙 많아 세대 간 소통 단절의 주범이 되고 있기도 하다. ‘개저씨’(개념 없는 아저씨), ‘맘충’(극성 엄마) 등 듣기만 해도 아찔한 은어들이 판을 친다. 게다가 거리 곳곳에는 한글이 한 자도 없는 간판들이 수두룩하다.
자랑스러운 우리글을 자취 없이 잃어버리는 비극은 시간문제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 나라말 파괴가 속수무책으로 진행되는 세태가 걱정스러운 까닭이다.
만신창이가 된 언어를 주고받는 사회 구성원들이 온전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언어의 품위는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한다. 당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무심코 쓰는 파괴 용어부터 돌아보자. 올바른 말글살이의 실천법이 거창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