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금호강 산책로를 걸어본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길을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데, 어디서 “여보세요!, 여보세요!”하고 소리를 빽빽 지른다.
나를 부르는 것인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한 여인이 핸드폰의 목줄에 이어폰에다 대고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혼자 있고 싶어도 혼자 머물 수 없는 세상,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혼자 있어도 늘 무엇인가에 쫓기거나 몰두하면서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겨 살아가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길을 가다보면 여기저기서 커뮤니케이션이 목소리를 높여 가고 있다. 마치 군중 속에 혼자 있음을 못 견뎌 하는 것처럼,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눌러댄다. 또 혼자 있으면 자동적으로 컴퓨터를 켜기도 한다.
이메일이 오지 않으면 왠지 허전해서 그냥 켜놓고 누군가에게 올지도 모를 이메일을 기다린다. 가을축제가 한창인 이 시대의 거리는 온갖 소리로 가득하다. 들길마저 심한 대기오염으로 가을비를 맞으며 낭만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 옛날 그리운 사람에게, 또는 친한 친구에게 받아보던 편지는 사라진지 오래다. 전자우편이나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로 소통하는 시대에 편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체취와 그리움이 묻어난 ‘편지’가 주는 기억도 아스라하다.
지금은 현란하고 화려한 거리에서 낭만을 찾기란 힘든 세상이 되었다. 각자는 골방에서 세상을 만나고, 세상은 골방에 웅크린 컴퓨터 앞으로 찾아온다. 직접 만짐으로 얻어지는 ‘접촉’의 체험이 사라져 가고 있다. 만지고 부딪치고 아파하면서 기쁨과 환희로 확산되어가는 아름다운 날의 추억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은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좌절을 모르고 끊임없는 욕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아픔이 없는 가상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만나고 ‘접속’하며 살아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살갑게 만날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게 체험하고 자극적인 감각 속으로 빠져들지만, 그 어느 때보다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무감각이 슬프다. 순간에 끝나고 흥분하게 하는 가상의 ‘접속’으로 가을날의 비, 빨간 우체통의 추억, 체취가 묻어나는 편지, 그리고 어릿광대를 만날 수 있는 진짜 공간을 잃어버려 안타깝고 슬프다.
달빛 교교한 병영에서 희미한 불빛아래 손때 묻은 사랑하는 애인의 편지를 읽는 시대는 지났다. 보초를 서면서 군복주머니에서 꺼낸 어머니의 비뚤 삐뚤 쓴 편지를 읽고 눈시울을 적시던 추억도 사라져 가고 있다. 가을비라도 내리면 아랫도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짜릿한 전율이 손때 묻은 편지 속에 묻어나는 시대는 가고 있는가.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판타지를 향한 욕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어린 아이 입에서 ‘섹시하다’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시대, 조금만 살이 오르면 ‘뚱뚱하다’는 콤플렉스에 갇혀 거울만 바라보는 십대 소녀, 조금만 불만스러운 외모를 가졌다고 성형을 하는 젊은이들, 이 모든 사회분위가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의 영혼들이 방황을 하고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외모지상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내면의 숭고함을 잊고 살기에 우리의 영혼은 설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대리체험이 가득한 디지털 세상에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아름다운 추억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영혼까지 잃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요즘에 우편함을 보면 편지는 없다.
고작 각종 세금고지서들이 빼곡히 꼽혀 있어도 손때 묻은 편지 한 통이 없다. 우리의 영혼은 이렇게 외치고 싶다. “돈, 명예, 외모, 학력이 모두 떠나더라도 끝까지 남아 당신을 지켜주는 것은 당신이 그토록 외면했던 아름다운 영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