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를 쥐고
이승희
둥근 돌이 싫습니다. 그 둥글다는게, 그 순딩이 같은 모습이 죽이고 싶도록 싫었습니다. 깨트려버리고서야 알았습니다. 둥근 돌 속에 감추어진 그 각진 세월이 파랗게 날 세우고 있던 것을, 무덤 같기만 하던 그 속에 정말로 살아 있던 것은 시뻘건 불을 피워 올리고도 남을 분노라는 것을.
둥근 것들은 다 그렇게 제 속으로만 날카로운 각을 세우나 봅니다.
-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창비, 2006), 23쪽
이승희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97년 『시와 사람』 「집에오니 집이 없다」 발표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에, 「풀과 함께」 당선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창비, 2006)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문학동네, 2012)
● ‘을(乙)’이라는 글자는 참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하루하루를 원만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원래부터 둥글둥글하게 태어났다. 모난 사람들은 모난 사람들, 둥글둥글한 사람은 둥글둥글한 사람들. 우리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이다.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더 웅크리고 웅크려가며 단단해져 가는 사람들. 둥근 조약돌 속에는 응어리진 세월이 있어, 삶이 힘들수록 더욱 굳세어져 한 시절을 견뎌간다. 아니 더 깊은 속내에 하나의 불꽃이 있어, 세상을 살아낼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그 험한 시간, 견디고 견디다 마침내 돌멩이들은 갈라지고 쪼개졌다. 쪼개지고 쪼개지며, 숨겨온 세월을 파랗게 날 세웠다. 그리고 무덤 같기만 했던 그 안으로부터 무서운 힘으로 촛불이 타올랐다. 촛불이 이룬 물결은 역사의 강물이 되었다.
조용하게 잠자는 둥근 조약돌 속에, 하나의 불꽃이 있다. ‘을(乙)’ 속에는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가 있다.
- 박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