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하종오
지방 소도시 임대 아파트 단지 공원 정자에
북한에서 탈출한 여인들이 모여 앉아 웅얼거리면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여인들이 모여 앉아 재잘거리면
서로 못 본 척했다
북한 출신 여인들은 겨울이면 바람 속에서
베트남 출신 여인들은 여름이면 햇볕 아래서
은근히 고향 집을 그리워한다는 걸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북한 출신 여인들과 베트남 출신 여인들은
꽃들 수런거리는 소리와 잎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잘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는지
봄가을엔 집집마다 창문을 열고 멀리 내다보았다
지난날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았던 점이 같고
지금 한국에서 지방 소도시 임대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처지가 같아도
북한 출신 여인들과 베트남 출신 여인들은 마주치면 살짝 웃을 뿐
한데 어울리다가 남한 여인과 다른 티를 보이고 싶진 않았다
- 『남북 상징어 사전』 (실천문학사, 2011), 136쪽
하종오
1954 경북 의성 출생
1975 현대문학에 「허수아비의 꿈」으로 등단
한국 작가회의 자문위원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창비, 1981)
『사월에서 오월로』 (창비, 1984)
『넋이야 넋이로다』 (창비, 1986)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 (실천문학사, 1986)
『정』 (실천문학사, 1987)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푸른 숲, 1989)
『젖은새한마리』 (푸른 숲, 1990)
『깨끗한 그리움』, (제 3문학사, 1993)
『님시편(詩篇)』 (민음사, 1994년)
『쥐똥나무 울타리』 (문학동네, 1995)
『사물의 운명』 (문학동네, 1997)
『님』 (문학동네, 1999)
『무언가 찾아올 적엔』 (창비, 2003)
『반대쪽천국』 (문학동네, 2004)
『지옥처럼 낯선』 2006년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국경없는공장』 2007년 (삶이보이는창, 2007)
『아시아계한국인들』 2007년 (삶이보이는창, 2007)
『베드타운』 2008년 (창비, 2008)
『입국자들』 (산지니, 2009)
『제국』 (문학동네, 2011)
『남북상징어사전』 (실천문학사, 2011)
● 외부인들은 늘 외롭다. 멸시는 우리의 생활양식이다. 우리는 타인의 멸시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와 다른 이들이 멸시당하는 것을 방관한다.
아마도 백 년 전의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부끄러운 역사로부터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어서, 우리는 여전히 2등 국민인가보다. 1등 국민을 찾아 조아리고, 3등 국민을 찾아 짓밟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우리 몫을 가져간 이들에겐 알아서 더 바치고, 우리의 나눔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외면하려고 안달인 삶이었다, 혹은 약간의 값싼 동정을 구매해 외면하고 살던 자신을 애써 외면하거나.
우리는 남쪽에서 왔기 때문에 무시했고, 북쪽에서 왔기 때문에 무시했다. 피부가 까매서 무시했고, 뚱뚱해서 무시했고, 키가 기준에 맞지 않아서 무시했고, 머리카락의 길이가 달라서 무시했고,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시했고, 혼자 살기 때문에 무시했고, 같이 사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고 무시했고, 아침에 출근하지 않는다고 무시했고, 주택 계약 방식이 달라서 무시했고, 근로 계약 방식이 달라서 무시했고, 몸이 불편하면 무시했고, 이동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무시했고, 말이 어눌하면 무시했고, 몸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무시했고, 몸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어떤 이에겐 커피나 타라며 무시했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장소가 다르다고 무시했고, 주민등록증의 번호가 달라서 무시했고, 여권의 발급처에 따라 무시했고, 태어난 지역에 따라 무시했고, 주소지에 따라 무시했고, 혹시나 나눔이 필요할까봐 더 무시했다.
우리들은 표준의 자리를 잃을까봐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살았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사람이길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외부자가 없는 세상, 그것이 바로 하나됨의 시작이다.
박영민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 문예지 『더 해랑』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