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동물원
김개미
안녕, 기억에 사로잡힌 앵무새야
안녕, 검은 바위에 꽃핀 이구아나야
안녕, 편도선이 부은 플라밍고야
안녕, 환청에 들뜬 원숭이야
안녕, 돌을 집어먹은 코끼리야
안녕, 눈동자에 시계를 가둔 고양이야
안녕, 버저를 눌러대는 풀매미야
안녕, 안녕, 안녕, 오늘의 태양을 기억해두렴
죽기도 살기도 좋은 날씨란다
-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문학동네, 2017), 12쪽
김개미(김산옥)
1971년 강원도 인제 출생
2005년 『시와반시』 신인상 등단
2010년 『창비어린이』 동시 등단
2012년 『어이없는 놈』 제1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저작
시집 『앵무새 재우기』 (북인, 2008)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문학동네, 2017)
동시집 『어이없는 놈』 (문학동네, 2013)
그림책 『사자책』 (재능교육, 2014)|
『나의 숲』 (기린과 숲, 2016)
시그림집 『나와 친구들과 우리들의 비밀 이야기』 (문학세계사, 2015)
● 우리는 하루하루 죽어가며 살아간다. 우리는 늘 오늘 뜬 태양만 보고 산다. 오늘 뜬 태양은 오늘만 볼 수 있다. 모든 세계를 동시에 경험할 수 없는 우리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언제나 파편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비틀거리며 살 수 밖에 없다.
과거는 우리 발에 채워진 족쇄다. 어제를 빚어 오늘을 만들고, 어제와 내일 속에 갇혀서 죽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을 살 수가 없다. 아니다. 우리는 뱅글뱅글 돌다 비틀댈 팽이, 바닥을 두드리며 삐약댈 병아리, 복날을 앞두고 헉헉대는 강아지다.
모든 것들이 눈부시게 비틀거리며 죽어간다, 아니 덜 죽었으므로 살아있다. 햇볕을 받고 있는 모든 살과, 가죽이 아름답다.
박영민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 문예지 『더 해랑』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