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류경무
봄날 꽃들의 속내를 나는 알지 못하지 머리에 꽃을 꽃은 여학생이나 커리 냄새를 풍기며 꽃나무 아래 앉은 이주 노동자들이 들뜨는 이유에 대해서 지금껏 한 번도 의문을 품은 적이 없지 그것은 그저 즐기는 일에 불과한 것이라서 내가 지금 꽃나무 아래 앉은 그녀를 유혹하려는 일이 그러하듯이, 그것은 지나치게 통속적이거나 분분히 꽃이 피거나 지는 그렇고 그런 일이라네 그래서 나는 이제 꽃의 속내와 같은 위험한 생각은 잊기로 했네 단지 오답의 형식을 지닌 수많은 숭고함에 대해 꽃처럼 맞서기로 했지 내가 먹었던 음식의 맛을 나만이 알 듯 음식 스스로가 제맛을 모르듯 내가 나의 맛을 도무지 알 수가 없듯, 꽃들은 자기가 피는 제 속내를 알기나 할까 모든 것이 갑자기 여기로 왔네 나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활짝 펴서 꽃피는 나무를 바라보네
- 『양이나 말처럼』 ( 문학동네, 2015 ) 107쪽
류경무
1966년 부산 출생
1999년 『시와 반시』로 등단
시집
『양이나 말처럼』 ( 문학동네, 2015 )
● 강아지가 찡그리고 있는 모습은 참 귀엽다. 강아지는 나름대로 몹시 진지하겠지만. 어린아이들이 투닥거리며 싸우는 모습도 귀엽다. 역시 나름대로 매우 진지하겠지만. 꽃은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 우리는 예쁘다고 웃으면서 지나쳤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의 입장에서만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래서 늘 찌푸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다. 낑낑거리는 강아지와, 칭얼거리는 아이와, 잔뜩 찌푸린 내가, 바람 앞에서 무엇이 다를까.
하루는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게 지나간다. 해가 지고 뜨면서 늙어간다. 봄이 오고 겨울이 오면서 낡아간다. 나무가 나이테가 늘어나듯이, 봄이 되면 이름 없는 무덤위에 새 잔디가 돋아오듯이. 봄은 무심히 간다. 겨울도 무심히 간다. 무심하게 죽고 무심하게 태어난다. 가장 일상 적인 것이 모여서, 성스러운 모습을 만들어 간다. 만물이 생육하는 풍경이다.
불어오는 바람과 한 마음이 되어야, 아름다움의 한 조각이 되어 살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