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
제페토
일 등급 고삼겹살을 접시로 내올 때에
비명은 담지 않았습니다
다소 불쾌한 전류의 저릿함도
담지 않았습니다
거꾸로 매달려 쏟은 선지도
담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피를 머금어 때깔 좋은 그것에
농장에서 나던 날 밤의 멋모르는 평온함만을
고스란히 담아내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이여, 너무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이들은 아직 사람이 아닌걸요
맛있게 드십시오
둘이 먹다
하나는 죽을 것이고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
- 『그 쇳물 쓰지 마라』 (수오서재, 2016), 138쪽
제페토
2010년 9월 16일, ‘당진제철소에서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사망’ 이라는 기사에 쓴 댓글 시로부터 대중에게 주목받기 시작. 이후 7년간 시 형태의 댓글로 활동.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 (수오서재, 2016)
● 여백이 그림을 숨 쉬게 한다. 섹시 화보는 노출이 실력이 아니라, 가리는 것이 실력이다. 시는 오해를 통해 내 것이 된다. 설명은 오해를 죽인다. 오해가 죽은 자리에 시는 죽는다. 현실은 다양하지만, 삶은 동일하다. 그래서 다양하게 아프고, 한결같이 아프다. 진통제가 바람을 타고 불어온다. 너와 나의 삶은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영원히 만날 수 없다. 만날 수 없는 공간을 건너가게 해 주는 것이 시다.
남의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내 이야기가 곧 남의 이야기다.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다. 내 이야기가 곧 신의 말씀이다. 신의 말씀은 가장 훌륭한 거짓말이다. 가장 훌륭한 거짓말은 가장 훌륭한 진실과 맞닿아 있다. 만 명의 사람에게는 만 좌의 신이 계신다. 만 좌의 신은 모두가 다른 신이면서도, 같은 신이다. 하나의 신은 하나의 예술을 낳는다. 하나의 예술은 만 편의 작품이 된다. 만 편의 작품은 만 명의 인생이 되면서 동시에 한명의 인생이 된다. 촛불이 심지 위에서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