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린 속 등장인물들이 관객을 향해 말하는 것처럼, 때로는 영화 속 공간과 장소가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멀게는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만드는데 일조한 <친구>로부터, 가깝게는 <연애학개론>과 <국제도시>에 이르기까지, 영화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힘은 의외로 크다. <밀양>, <파주>처럼 아예 지명을 제목으로 붙인 영화는 밀양과 파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서를 담아내며 한국 영화계에서 중요한 걸작으로 남았다.
100% 대구에서 촬영되는 유지영 감독의 <수성못>(가칭)이 이러한 지역 배경 영화 리스트에 곧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지역 출신으로 경일여고, 계명대, 홍익대를 거친 유지영 감독은 2014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산하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2015년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과정에 합격하여 오는 10월 장편 <수성못>의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과정은 <파수꾼>, <소셜포비아>, <짐승의 끝>, <잉투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다수의 화제작을 배출해 낸 한국영화 신진감독 배출의 최고산실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제작될 예정인 <수성못>은 수성못을 배경으로 편입준비생 희정과 어두운 과거를 지닌 영목, 현실에 좌절하는 희준 등의 젊은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자살소동극을 담을 예정이다. 자살이라는 소재를 통해 젊은이들의 좌절과 실패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젊은이들의 현재를 담담한 어조로 관조하면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찾아내겠다는 것이 감독의 목표이다. 한편 감독은 수성못을 배경으로 한 이유에 대해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도심 한 가운데의 거대한 저수지의 이미지가 너무 매혹적이어서 이를 배경으로 써 둔 단편 시나리오가 장편으로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 전주국제영화제 단편부분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지영 감독은 섬세하고 복잡한 심리묘사에 능하며, 예술성 있는 차세대 감독 유망주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첫 장편데뷔작이 될 <수성못>을 자신만의 스타일을 녹여낸 “웰메이드 독립장편”으로 만들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하였다.
현재 <수성못>은 10월 촬영을 앞두고 주조연 배우 캐스팅 및 사전준비 작업 중이다. 진행과정 상의 어려움에 대해 감독은 “100% 대구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전국단위 개봉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홍보가 미진한 탓에 아직 호응이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대구에서 큰 규모의 촬영기회가 적다보니 낯설어 하시는 것 같다. 몇몇 단체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촬영 및 장소 협조 등 더 많은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라며 아쉬워하였다.
대구와 대구시민이 “메이드인 대구” 영화를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는 단순히 한 젊은 감독의 고군분투에만 달린 것은 아니다. 어쩌면 문화예술도시 대구로의 더 큰 도약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이 소중한 도전에, 지역시민 및 행정단체의 적극적인 도움과 후원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