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의 작가 들여다보기】 두 번째.
박소란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창비시선 386)
- 생의 어두운 이면에서 찾은 언어로 구원의 노래를 부르다
- 오랜만에 만나는 우리시의 젊고 아름다운 서정을 엿보다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한 이후 독특한 발성과 어법으로 개성적이고 활달한 시 세계를 펼쳐온 박소란 시인의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이 출간되었다.
등단 6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생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포착해내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도시적 삶의 불우한 일상을 감성적인 언어로 면밀히 그려낸다. 체념과 절망뿐인 비참한 현실 속에서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슬픔을 연민의 손길로 다독이며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곱씹는 내밀한 성찰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시편들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현실의 모순을 끄집어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자의 삶과 시대의 아픔까지 껴안으면서 “맨살로 죄와 병을 감내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써”(김성규, 추천사)온 시인의 고뇌 또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폐품 리어카 위 바랜 통기타 한채 실려간다//한시절 누군가의 노래/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아랑곳없이 바퀴는 구른다/길이 덜컹일 때마다 악보에 없는 엇박의 탄식이 새어나온다//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영원이 아니어라/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다만 흉터였으니/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칼이 실려간다 버려진 것들의 리어카 위에//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노래는 아무것도」 전문)
내 아버지가 나고 자란 마을에선 저녁을 지익이라 부르지/야야 지익 묵구로 인자 고마 들온나, 할머니 정지 앞에 서 손짓하면/순하게 누운 하늘과 땅 그 맞닿은 속살 어디쯤에선가 지익—지익—/땅거미가 낡은 신발 뒤축을 끌며 오는 소리/(…)/낯모를 슬픔이 마음의 여린 뺨들을 할퀴는 소리/할퀴인 자리마다 여문 어둠이 촘촘히 수놓이는 소리/야야 고마해라 지익 다 됐다, 하면/마루 위 한상 가득 내려앉은 달큰한 지익은 그만/밥이 되고 약이 되었네 눈시울을 훔치며 달려와/말없이 숟가락을 든 젖은 손등 위 한줄기 우직한 심줄에도/막 새살이 오른 듯 뜨거운 빛이 돌았네 (「지익」 부분)
이상은 출판사 서평이다. 이하는 시인과 주고받은 대화이다.
(이하 인터뷰)
문 : 첫 시집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
답 : 데뷔 6년 만의 첫 시집이다. 동년배 시인들을 보면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시집을 뚝딱뚝딱 잘도 묶어 내는데, 나는 내내 자신이 없었다. ‘4년쯤 지나고서야 시집을 좀 준비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천천히 준비한 책이 올해 들어서야 나온 것이다. 6년 만의 시집인데도 50여 편을 묶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시가 이렇게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더 부지런해져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문 : 서정주 시인은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의 바람이라 했는데, 박소란 시인에겐 무엇이 있었나?
답 : 나를 키운 게 뭔지, 그건 더 살아봐야 알 것 같은데,,,,(웃음) 지금으로선 ‘고집’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은근히 고집이 센 편이라,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별반 재능이 없다고 여긴 시 쓰기를 계속 하고 있는 것도, 한 권의 시집을 묶어낸 것도 결국 고집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 : 시집 전편에 분위기가 있어 여쭤본다. 본인이 생각하는 사랑과 죽음은 무엇인가?
답 : 사랑이든 죽음이든 매우 순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행하는 아주 근원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어떤 불순물 없이 순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에 일종의 결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희고 빳빳한 삼베 같은 것이 떠오른다. 사랑과 죽음은 아주 다른 개념이겠지만, 이런 면에서는 동일하게 여겨지는 지점이 있다.
문 : 슬픔을 꾹꾹 눌러쓴 시집 같다. 이유는 무엇인가?
답 :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너무 청승을 떨어서 그렇게들 느끼시는 게 아닌가 싶다. 그냥 펑펑 울고 싶었고, ‘첫 시집이니까 좀 울어도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놓고 보니, 읽으시는 분들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좀 개운해졌다. 조금 편해졌다. 마음이... 그러나 첫 시집이 ‘너무 슬프다, 처량 맞다’ 하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다음 시집은 조금 따뜻한 내용으로 채우고 싶다.(웃음)
등단 6년 만에 펴낸 첫 시집은 시대의 통증을 투박하고 퉁명스럽게 읊조리고 있다. 푸른 청춘임에도 수많은 통점(痛點)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시인 김성규는 추천사에서 “맨살로 죄와 병을 감내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써나가는 시인이 여기 있다. 현란한 시대에도 예술은 스러져가는 세상 만물과 자신을 위무하는 것이라고 시들은 일관되게 말하는 듯하다.” 또 그 연장선에서 “노래의 무용성을 알면서도, 세상 곳곳을 떠돌며 아무도 보지 않는 통점을 풀어낼 때 노래는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구원의 가능성을 품은 태초의 언어가 될 것이다.”라고 시집을 평했다.
추천사에 덧붙여, 필자는 가령 시 「주소」의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와 같은 짧은 문장들에서 한참이나 멈춰서 방황하였다. 아직도 진행형인 통증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결말이나 슬픔의 무더기가 정리되지 못하고, 시인의 곁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여전히 나와 타자는 쓸쓸하고 아픈 존재다. 동시에 서로 위무하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 한 권의 시집에는 이런 진솔한 시적 고백이 담겨있다.
통점이 그대로 박혀 시가 된 『심장에 가까운 말』을 읽고 나서, ‘참으로 오랜만에 사랑이 고프다’라고 생각했다. (글 / 시인 정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