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조목조목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했으며 시정할 것은 시정해 달라는 요청.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반발해 소란이 벌어졌다.
청와대는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뿐 아니라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국가원수 모독죄에 해당한다."며 "법률적 검토를 거쳐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했다.
과연 더불어민주당에서 말하는 국가원수의 모독은 이해하겠는데 ‘국민에 대한 모독’은 이해가 잘 안 된다. 이 시점에서 대국민 여론조사라도 해보았으면 한다. '김정은 수석 대변인' 표현은 작년 9월 블룸버그 통신이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처음 쓴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유엔총회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를 칭송하는 사실상의 대변인 됐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한 것이다. 이 기사는 곧 국내에서도 언론이 기사화하고 화제가 됐지만 청와대는 아무른 반박도하지 않았다. 민주당도 침묵했다.
아마도 자신들이 생각해도 '김정은 대변인'이란 말을 반박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나 야당 원내대표가 '수석 대변인이란 말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하자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이해찬 대표가 적용하겠다는 '국가원수 모독죄'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던 죄명이다.
유신 시절인 1975년 형법에 '국가모독죄'가 만들어졌다가 1988년에 폐지됐다. 운동권 정권이 외신을 인용한 대통령 비판에 대해 독재 시대에도 없던 '국가원수 모독죄'로 처벌하겠다고 한다.
과연 이들이 내세우는 '민주'는 허울일 뿐인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연설 도중 격렬한 항의 때문에 20여 분 동안 연설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런 추태를 보인 데 대해 여야 모두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냉철히 따져보면 여당의 과잉 반응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첫째, 취지와 문맥을 보면 그리 흥분할 일이 못 된다.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대해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 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 여러 언론에 인용 보도됐다. 나 원내대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건의의 요청이다. 그런데도 마치 ‘문 대통령이 김정은 대변인’으로 규정한 것처럼 곡해해 문제를 키웠다.
둘째, 집권세력이 이 정도의 비판도 수용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연설 전문을 보면, 국정 전반을 조목조목 날카롭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여당이 아프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지만, 야당으로서 나름의 주장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당 대표까지 나서 ‘국가원수 모독죄’ 운운해선 안 된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라도 경청해서 듣고…”라고 했다.
셋째, 여당은 야당 시절 훨씬 더 심한 비난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귀태(鬼胎)’라고 하고, 국회에서 민망한 내용의 ‘합성 누드화’를 전시하도록 주선한 바도 있다. 당 최고위원은 ‘암살’을 경고했으며, 다른 최고위원은 ‘그년’이라고 해 논란을 빚었다. 이런 것에 비하면 나 원내대표의 표현은 너무나 점잖은 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제로 ‘북한 변호인’을 자임하기도 했다. 현 정부 정책이 북한 친화적이라는 데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현 정부 차원에서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나 원내대표 발언을 반박하는 확실한 방법은, 북한 입장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사실과 논리로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인신공격까지 한다면 ‘제 발 저린 것 아니냐’는 부메랑을 맞거나,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독재적 행태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은 역대 급이다. 아직 누구도 그렇게 국회 본 회의에서 명연설을 한 국회의원은 찾기 힘들다. 조목조목 비평하고 또 대안을 제시했으며 시정할 것은 시정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북한 핵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특사를 파견해 비핵화가 진실이라면 한국당이 먼저 나서 적극 지원하겠다고도 말했다. 물론 여야가 대치한 상태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이 여당의 비위를 거슬렀겠지만 집권 여당으로 그만한 재량도 못 갖추었다면 여당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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