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이 끝나면 지적을 받았던 선수들을 불러 어깨를 다독이며 마음 넓은 아버지로 변신.
베트남에 신드롬을 일으킨 박항서 감독(59)이 우리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건 2002년 한일월드컵 때다. 당시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서 황선홍이 첫 골을 넣은 뒤 한국 벤치로 달려가 당시 박항서 수석코치의 품에 안기는 장면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형님 리더십의 결과다.
히딩크 감독은 황선홍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줄 알고 양팔을 벌렸다가 머쓱해했다. 박 감독은 한국 축구계에서 전형적인 비주류다. 경신고·한양대 출신인 그는 ‘히딩크호’에서 수석코치로 도운 덕분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생애 첫 국가대표 감독이 됐다. 하지만 이란과의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자 고작 두 달 만에 경질됐다. 정신적 상처가 매우 컸다.
그는 “감독 제의를 받아들인 걸 후회한다. 앞으로 축구협회와 관련된 일은 절대 할 마음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이후 불러주는 팀이 없어 까마득한 후배인 최순호 포항스틸러스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는 등 전전했다. 그러다 58세 스포츠계에 적은 나이가 아닌 그가 마지막 도전으로 베트남을 택한 것이다.
당시 국제축구연맹 랭킹 102위이던 베트남은 ‘외국인 감독의 무덤’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10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해 지난해 10월부터 성인 대표팀과 23세 이하(U-23) 대표 팀 감독을 겸직했다. 취임 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이길 정도로 강인한 국민성을 강조하며 “누구에게도 질 이유가 없다”고 투지를 끌어올렸다.
아침에 쌀국수 대신 고기와 우유로 식단을 교체해 체력도 키웠다. 부상당한 선수는 직접 발 마사지를 해주고, 생일 맞은 선수에겐 손 편지를 썼다. 이런 그를 선수들은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게 됐다.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만년 약체에서 올 초 아시아축구연맹 U-23 선수권 준우승 기적에 이어 이번에는 아시안게임 4강 진출이란 신화를 썼다.
현재 베트남은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른 한국과 같은 축제 분위기다. 박 감독은 국민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박항서 감독은 연예인의 인기를 넘어설 정도란다. 민간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하는 ‘박항서 매직(Magic)’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베트남 국민들이 ‘감독 박항서‘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비단 그의 ‘성과’ 때문만은 아닌듯하다.
박항서 감독은 경기장에서 종종 불같이 화를 낸다. 선수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동아일보는 박항서 감독의 2009년 전남 드래곤즈 감독 시절을 소개하며 “평균 20년 이상 나이 차가 나는 어린 선수들에게 그야말로 호랑이 감독”이라고 평했다.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박 감독은 움직임이 둔한 선수들에게 “다음 동작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플레이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고도 전했다.
이런 ‘엄한’ 모습만 보이면 충분히 매력적인 감독이 아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에게는 반전이 있다. 앞서의 동아일보에서는 박항서를 ”하지만 박 감독에게는 선수들을 감싸는 따뜻함도 있었다. 단계적인 훈련이 끝나면 지적을 받았던 선수들을 불러 어깨를 다독이며 마음 넓은 아버지로 변신했다”고 소개한다.
이른바 ‘박항서 리더십’에 한국 국민은 물론 베트남 국민들도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한국 축구계에서 소외당했던 박 감독은 국제축구연맹의 하위그룹의 베트남 축구를 아시안컵 4강까지 끌어 올린 베트남의 위대한 영웅으로 부각된 데는 강한 "희생"의 리더십과 가족 같이 선수를 다루는 박항서 감독만의 특유의 지도법이 작용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