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왕부의 여행사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 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 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 다오 북진 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 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 보자
‘대구 시간여행(근대역사 문화탐구)’에 대한 연수를 들으면서 한국전쟁 당시 그 유명한 ‘굳세어라 금순아’가 탄생한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다.
대구광역시 중구 교동 14(화전동 14-7) 미리내 수입의류 매장
(구. 오리엔트 레코드사)
지금은 오리엔트 레코드사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고 1층은 ‘미리내 수입의류’매장으로 운영되고 있고, 주인의 허락을 받아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문이 잠겨있었다. 머릿속으로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가 스쳐 지나가듯 떠오르는 순간 주인장이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적은 간데없고, 그나마 건물이 남아 있음을 위로하며 사진을 찍어본다.
이곳은 해방직후 1947년 이병주씨가 악기사를 개편하여 오리엔트레코드사를 설립하여 1층은 레코드사와 녹음실로 운영하고 2층은 작곡가 박시춘의 부인 김예비 여사가 ‘오리엔트 다방’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 가요의 산실이 되었다고 한다. 박시춘 작곡, 현준 노래인 ‘굳세어라 금순아(1953)’가 바로 여기 2층 오리엔트 다방에서 녹음되었다고 이병주 전 오리엔트레코드사 사장이 증언했다고 한다. 녹음될 당시 낮에는 시끄러워서 밤 12시가 넘어 음반작업을 시작했고, 방음을 위해 군용담요를 여러 겹 엮어 방음장치 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기사정이 나빠 수시로 정전이 되어 NG가 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출처: 대구 시간여행 연수자료)
이런 어려운 조건하에서 ‘굳세어라 금순아’가 탄생한 것이다.
‘굳세어라 금순아’의 배경은 부산 국제시장이지만 작곡가는 대구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즉 대구에서 만들어진 노래라는 것이다. 대구가 근대의 역사적 문화적 중심에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