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계절이 바뀌면 노인들이 세상을 떠난다. 아마도 계절의 무게에 견디기가 힘들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상(喪)을 당하는 분이 부쩍 많아 졌다. 결혼, 장례 등 경조사 소식 등이 날아올 때마다 고민이 깊어진다.
당연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관계라면 참석하여 기쁨을 더하고 슬픔을 나누겠지만, 평소에 교류 없이 이름이나 얼굴 정도만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참석과 불참 사이에서 엄청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주변의 눈치와 부담 때문에 할 수 없이 '얼굴도장'을 찍는 일이 다반사다. 이것이 본질이나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은 '영혼 없는 자리'가 아닐까, 한국 문화에는 마음에는 없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참석하는 '영혼 없는 자리'가 무척 많다. 대표적인 것이 경조사겠지만, 명절 때 며느리는 남편의 부모님이니까, 최소한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역시 '영혼 없는 자리'로 갈 수 밖에 없다.
최근 설이나 추석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기록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들의 명절 탈출은 형식적인 자리를 피하고자 하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미국과 북한을 연결하려는 자리를 만들었다. 평창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 장소에서 미국의 펜스 부통령과 북한의 김영남, 김여정을 억지로 앉혀 놓고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려 해서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를 꾀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펜스 부통령은 북한의 김영남과 악수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영혼 없는 자리'를 거부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펜스 미국 부통령이 행사 도중에 자리를 뜨는 등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한다. 우리가 마련한 잔치에서 굳이 펜스가 김영남을 외면할 필요가 있었는가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외교 무대에서 소위 '번개팅'을 주선한 우리 정부를 나무란다.
필자가 보기에는 마음에 없더라도 감수하고 희생하는 한국 문화와 자기 의견이 분명한 미국 문화가 충돌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 되고, 남북과 북미 간의 화해무드가 오는 27일 팜문점 그것도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도보로 내려온다니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한 한반도의 화해 무드가 성사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이 끝나면 과연 남북 간 화해가 지속될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북한의 핵 위협은 사라질 것인가?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핵의 폐기가 거론되고 있다. 우리는 일부 보수단체들이 집요하게 남북정상회담에 태클을 걸지만, 중요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이다. 문화의 차이도 있지만 관연 ‘영혼 없는 회담’이 될까 걱정이다.
1993년 발표된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열강의 틈새에서 남북이 협력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에 핵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 핵이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반대의 입장은 북한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과의 대화도 거부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들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는 시간 벌기 작전이고, 한국과 미국 동맹을 이간시키는 전술이라고 했다.
그러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스포츠를 넘어 많은 외교적 성과를 가져왔다. 우리 국민들도 모처럼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선수들 응원에 집중할 수 있었고, 북한의 예술단, 응원단들의 화려한 공연이 있었던 것도 문 대통령의 외교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 받았고 평양으로 초청을 받았다.
그것이 이어져 판문점 회담으로 이어졌고, 영구적인 평화, 그리고 화해의 장이 열려 핵 없는 한반도와 남북의 화해 무드가 지속되어 개성공단도, 금강산도, 왕래하고 이산가족상봉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가가 평화와 화해의 길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나 본다. 과연 이번 회담이 '영혼 없는 자리'가 아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심이 담긴 자리'였으면 좋겠다.